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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May 19. 2024

여동생

언니도 만들어줘!

 밤이 되자 엄마와 함께 자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방에서 나가라고 손을 잡아끌던 할머니가 은영을 이기지 못하고 이불을 펴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옆에서 잠이 들었지만 이내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어디서 데리고 왔는지 처음 보는 얼굴이 빨간 인형을 얼굴만 내놓은 채 꽁꽁 싸매 엄마 옆에 있었다. 인형을 씻어서 말리려고 저렇게 꽁꽁 싸놨나 싶어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인형의 살짝 찔렀다. 눈을 감고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인형 같았다. 인형의 볼에 빨갛게 손가락 자국이 남았다. 감고 있는 눈의 긴 속눈썹이 신기해 손가락으로 눈을 찔렀다.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 은영의 팔을 세게 잡아챘다. 

 “은영이 니 뭐하노? 큰일 난다. 니 동생이다. 인제 니가 잘 데리고 놀아야 된다. 니가 언니다 인자.”

 “할무이 나는 여동생이 없었는데!”

할머니의 거짓말에 은영이 꿈속인 듯 대답했다. 이내 무거운 눈꺼풀은 다시 이부자리로 파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은영은 깜짝 놀랐다. 분명 어젯밤 꿈속에서 봤던 사람 같은 인형이 내 옆에서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 저거 뭔데? 어디서 가져왔노? 인형 눈이 막 움직이는데! 눈동자가 까매!”

 “은영아! 니 동생이다. 니 언니다 인자. 어디서 가져온 게 아니고 어제 엄마가 배 아파서 낳았다 아이가.”

 “거짓말!. 내 동생 아니라니깐 어데서 주워와가지고 그라노 자기 집에 보내라 지엄마한테 보내라”

 할머니는 놀라 방으로 들어와 은영의 등을 떠밀었다. 방 밖으로 쫓겨나 안방 문을 열고 던지듯 밀어 넣고는 그대로 문을 닫았다. 입이 댓 발 나와 있었지만, 방안의 신기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안은 얇고 긴 새끼줄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아빠 나도 새끼 잘 꼬는데 나도! 나도 할끼다.”

 “금줄이라서 니는 못할 낀데 해볼라면 어디 해봐라. 자!”

은영의 작은 손에 짚이 쥐어졌지만, 새끼줄이 만들어지는 대신 손바닥에 불이 나고 있었다. 아빠가 물을 한 모금 머금고 마른 짚에 물을 뿜었다. 은영도 흉내를 내려 물 만 한 바가지를 다 먹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침 이슬이 마르기 전에 아버지는 산에서 깨끗한 솔가지를 꺾어왔다. 할머니는 부엌 아궁이에서 숯을 꺼내 깨끗이 씻어 방으로 들여놨다.

 “그리 서 있지 말고 저것 좀 앗아줘라!”

할아버지는 긴 새끼줄에 은영이가 앗아주는 숯과 솔가지를 순서대로 꽂기 시작했다.

 “이기 뭔데예? 이 새끼줄 가지고 뭐할 낀데 예?”

 “금줄 아이가? 니 금줄 모르나?”

할아버지는 아기를 낳으면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새끼를 왼쪽으로 꼬아 숯과 솔가지를 꽂는다고 했다. 새끼줄을 왼쪽으로 꼬아야 귀신이 반대로 꼰 새끼줄을 따라 해가 뜰때까지 밤새 길을 헤매다가 도망간다고 했다. 숯은 나쁜 것을 정화하는 능력이 있어 갓 태어난 아기가 아프지 않게 하고 솔가지는 사람의 명을 길게 하는 것이라며 은영에게 어린 동생을 잘 돌보라고 당부를 했다. 완성된 금줄을 엄마가 누워있는 방 문 위에 쳤다. 대문을 지나 흙담에도 금줄이 길게 쳐졌다. 낮이 되자 동네 사람들이 대문 앞으로 금줄을 구경하러 모이기 시작했다.

 “딸인 갑다. 고추가 없는 거 보니까!”

 “금줄도 애들 아빠가 단단이 잘 꽈놨네!”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할머니가 미역국을 가지고 엄마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가려다 마루에서 멈춰서서 시끄러운 골목을 쳐다보자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많이 아픈 것은 아닌지 은영은 걱정이 되어 문을 열지 말라는 할머니의 당부에도 문틈으로 슬며시 들여다보았다. 엄마는 미역국을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은영은 왜 저 아기는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할머니가 안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지금은 아기니까 조금 키워 걷기 시작하면 친엄마를 찾아 보낼 것으로 생각했다. 조금 있으면 친엄마에게 갈 아기니 함부로 만지지 않기로 생각했다. 

 엄마가 방에 누워있는 동안 매일 마당으로 부엌으로 뒷밭으로 쉴 새 없이 할머니의 심부름하는 은영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를 독차지하면서 누워서 냄새나는 똥만 하루에도 몇 번씩 싸대는 그 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제쯤 친엄마에게 데려다줄 것인지 식구들에게 물어봐도 대답 없이 머리만 쥐어박으며 웃을 뿐이었다. 방안에 쌓여 있는 똥 기저귀를 보니 많이 먹는 것 같아 걱정되었다. 아기의 친엄마는 왜 자기 자식을 찾지도 않는지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엄마! 쟤는 언제 친엄마한테 보내는데? 맨날 똥만 싸고 잠만 자고 울기만 울고 시끄러버서 죽겠다 아이가.”

은영의 갑작스러운 말에 엄마가 놀라 말했다.

 “은영아! 이 아기는 니 동생이고, 엄마 배에서 나왔다. 엄마가 친엄마다.”

 “나도 다 안다. 아기는 배꼽에서 나온다는데 엄마는 배꼽도 그대로 있더만 거짓말하지 마라. 동네 사람들한테 다 물어 볼 끼다. 맨날 나만 놀리고 내가 바본 줄 아나!”

잔뜩 화가나 집을 나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가만히 처음 아기를 봤던 날 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얼마 전 동네의 다른 집에도 금줄이 달렸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숯과 고추, 솔가지가 걸렸었고 그 아기는 고추가 달린 남자아이였다. 은영이 왔던 길을 돌아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엄마 나도 언니 만들어줘! 나만 언니 없어! 언니 만들어줘 언니! 언니! 빨리 언니 만들어 주라니까!”

대문을 들어서며 은영이 희망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곧 언니가 생긴다는 생각에 신이나 마당에서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매일 아침 정화수를 떠 놓고 금줄 앞에서 두 손 모아 가족의 안녕을 빌던 할머니를 따라 은영도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소원을 빌었다. 개구쟁이 바람이 대문으로 들어오려다 금줄을 보고 깜짝 놀라 도망을 쳤다. 금줄이 으쓱하며 숯과 솔가지를 흔들어 깨웠다. 금줄에 매달린 숯처럼 까만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며 아침 햇살에 곱게 반짝이고 있었다.     


 누워서 똥만 싸던 그 아기는 결국 친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함께 울고 웃고 싸우며 지금껏 나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있다. 삼신할머니가 늦게 보낸 나의 엄마같은 언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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