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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May 19. 2024

술빵

추억의 맛

 “은영아 저기 점빵가서 술 약 좀 사와라. 내가 아침에 말해놨응께 심부름 왔다 카면 줄끼다”

 엄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대야를 손에 든 채 마당으로 나가다 은영을 보며 말했다.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보며 시간을 보내던 은영의 마음이 급해졌다. 됫돌에 있는 고무신을 신지도 못하고 발에 끼우면서 깨금발을 하고 동네에 하나 있는 가게로 뛰어갔다. 엄마가 술 약을 사 오라는 것은 맛있는 술빵을 만든다는 것이다. 술빵을 먹을 생각에 흙길을 한참 달려야 하는 심부름도 싫지 않았다. 가게에 도착해 술 약을 얇은 종이에 싸고 있는 주인아주머니를 보고 있으니 더 마음이 급해졌다.

 “엄마! 술 약 여기”

흙길을 달려오느라 얼굴에는 땀으로 흙 고랑이 만들어졌다. 숨을 고르며 마루에 앉아 가만히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은영의 머리카락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가 막걸리와 밀가루를 꺼내 반죽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술 약을 싼 얇은 종이를 펼칠 때는 행여 동그랗고 작은 술 약이 흘러 도망을 갈까 봐 은영도 엄마도 숨을 참았다. 동글동글 작은 회색빛 가루가 물에 들어가자 뿌옇게 변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작은 공기 방울을 내 뿜기 시작했다. 마치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아 조용히 귀를 가져다 대니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엄마는 대야를 가져와 밀가루를 바가지로 퍼 넣었다. 소금과 설탕이 들어가고 부엌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흔들어 넣었다. 반죽하는 엄마의 손이 밀가루로 하얗게 변해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호랑이 손 같았다. 막걸리 냄새에 온몸이 술에 취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졌다.

 “은영이 니 저번처럼 막걸리 묵으면 안 된다. 알긋나?”

 “안 묵는다 엄마. 그때는 술지게미 쪼끔 묵은 기제”

엄마가 막걸리 주전자를 옆으로 치우며 실눈을 뜨고 은영을 단속했다. 마지막으로 혼자서 몽글몽글 움직이는 술 약을 넣고 다시 반죽을 섞었다. 걸쭉하게 만들어진 반죽이 신기해 손가락으로 찔러보다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다. 눈물이 찔끔 났지만, 막걸리 냄새에 벌써 취한 것인지 은영이는 엄마 옆에서 웃기만 했다. 이제 강낭콩을 삶을 차례였다. 마당에 걸린 양은 냄비가 온몸을 흔들며 끓기 시작했다. 달큼한 냄새가 마당을 휘감았다. 

 “콩도 삶아놨고 니 술빵 안 넘치게 잘 봐라 알았제!”

은영에게 몇 번이나 당부하고 엄마는 윗동네 마늘밭으로 일을 나갔다. 나가서 놀고 싶지만, 반죽이 부풀어 넘치지 않게 보초를 서야 했다. 반죽이 부풀어 올라 흘러내리지 않게 반죽 대야 앞에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은영아 고무줄 하자”

동네 아이들이 고무줄을 들고 은영을 불렀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반죽을 보며 잠시 망설이던 은영이 친구들이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실컷 고무줄을 뛰고 골목에 있던 아이들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은영도 집으로 돌아와 마루에 앉았다. 무언가 잊은 것이 있는 것 같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부엌으로 들어간 은영은 깜짝 놀랐다. 술빵 반죽이 대야를 타고 넘어 부엌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곧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손에 물을 묻혀 부엌 바닥으로 번지고 있는 반죽을 퍼담기 시작했다. 흙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반죽을 대야에 퍼 담았다. 부풀었던 반죽은 숨이 죽어 반도 되지 않았다. 흙이 묻은 반죽은 소죽통에 넣어 증거를 없앴다. 잠시 후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흙 묻은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보니 겁이 났다. 엄마의 눈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깨를 움츠린 채 기어서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사실은 넘치가지고 내가 다시 담았는데 흙 묻은 거는 소주고”

 “은영아! 불 때자. 인자 찌면 되겠다.”

은영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부엌에 아궁이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솥에 물을 붓고 나무 채반 위에 젖은 삼베를 깔았다. 거품이 가득 든 반죽을 삼베 위로 부었다. 하얀 눈밭 같은 반죽에 삶아놓은 강낭콩을 뿌렸다. 드디어 무쇠솥 뚜껑이 덮였다. 밀가루 반죽이 빵이 된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얼른 빵을 먹고 싶은 생각에 엄마를 도와 열심히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솥에서 김이 올라오고 부엌 가득 시큼한 빵 냄새로 가득 찼다. 시간이 지나 아궁이에 불을 빼고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지루하고 설레는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솥뚜껑이 열렸다. 김이 한가득 올라오고 난 뒤 뽀얀 얼굴에 주근깨 같은 강낭콩이 박힌 술빵이 보였다. 통통하게 부풀어 올라 ‘어서 먹어’ 달라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엄마와 삼베를 잡고 술빵을 꺼냈다. 마루에 앉아 엄마가 한 김 식은 술빵을 잘라 채반에 담고 마지막으로 제일 작은 것을 은영에게 건넸다.

 “은영이 니 오늘 욕봤다. 이거 묵으라 이거 니끼다”

 술빵을 받은 은영의 눈과 입이 커졌다. 은영이 등을 돌리고 콩을 하나씩 떼어내자 엄마가 등짝을 때리며 눈을 흘겼다. 놀란 은영이 떼어낸 콩을 모두 집어 입 안에 넣었다. 목젖에 콩이 땋아 눈물이 찔끔 났다. 콩을 씹는 둥 마는 둥 삼키고 술빵을 먹기 시작했다. 수돗가 있던 엄마가 마루에 앉아 술빵을 먹는 은영을 보고 물 한 사발을 가져다주며 소리쳤다.

 “은영아 천천히 묵으라. 다 니끼다. 누가 안 뺐어 묵는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마루에 앉아 입안 가득 달콤한 술빵을 먹은 은영의 얼굴에 마당에 일렁거리는 아지랑이처럼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은영의 집 마당에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시골에 살던 나는 빵을 파는 빵집이 있는 줄도 몰랐고 장날에 엄마를 따라 장 구경을 가도 요즘같이 달콤하고 화려한 빵은 구경할 수 없었다. 시골에서 농사일하며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큰소리를 쳤지만, 반백이 되고 보니 내가 보고 배운 대로 엄마가 어린 나에게 했던 것처럼 맛은 덜하지만 건강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 나의 아이들도 그때의 어린 은영처럼 투박한 맛에 투덜대고 콩을 싫어한다. 그래도 가끔은 엄마가 만든 음식이라고 군말없이 먹어 준다. 그럴때면 고맙기도 하다. 아이들이 내 나이가 되면 가끔 내 음식들을 기억하고 그립다 말해주면 좋겠다. 내가 엄마의 술빵을 그리워하듯! 추억을 그리워 하고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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