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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May 19. 2024

이별

송아지의 탈출

 은영이 비명을 지르며 온 집을 도망 다니고 있었다. 얼마 전 태어난 송아지가 마구간에서 나와 마당으로 뒤란으로 마루에서 날뛰고 있었다. 아직 코두레를 하지도 않아서 날뛰는 송아지를 작은 은영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어른들도 아무도 안 계시고 집에는 은영 혼자였다. 송아지를 피해 마당을 돌던 은영이 할 수 없이 대문 밖으로 나와 엄마가 일하시는 논으로 뛰어갔다.

 “엄마! 엄마! 송아지가 마루랑 방에 뛰 올라와가지고 난리 났다”

은영의 말에 놀라 엄마가 집으로 달려갔다. 은영이와 엄마는 송아지를 몰아 마구간에 넣고 나무로 단단히 마구간 입구를 막았다.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장독은 깨지지 않았다며 엄마가 집을 치우기 시작했다. 은영도 마루를 쓸고 걸레를 빨아 닦았다. 집 정리가 되어가자 엄마는 다시 일하러 나가셨다. 은영은 마루에 앉아 마구간을 보고 있었다. 대나무 빗자루를 옆에 두고 다시 송아지가 마구간에서 뛰쳐나오면 달려가 때리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날은 송아지는 마구간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송아지가 마구간 입구의 나무를 머리로 박아 떨어뜨리더니 다시 마당으로 나와 날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당만 뛰어다니더니 수돗가와 장독대까지 기웃거렸다. 은영이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막아봤지만, 겁을 내지 않았다. 그래도 대나무 빗자루가 무섭기는 했는지 방향을 틀어 뒤란으로 갔다가 돌아 나와 마루로 뛰어올랐다. 은영이 아침나절 내내 쓸고 닦고 청소를 끝내놓은 마루가 흙과 소똥으로 엉망이 되었다. 마루에 올라간 송아지는 발이 미끈거려 휘청거렸지만 내려올 것 같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방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방문은 닫혀 있었지만, 대나무를 엮어 한지를 붙인 방문은 힘이 없어 송아지가 이마로 몇 번만 치면 문이 열릴 것만 같았다. 마당에서 대나무 빗자루를 칼처럼 들고 서 있는 은영의 얼굴은 전쟁터에 나간 장수처럼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은영이 마루 앞으로 다가와 쥐고 있던 대나무 빗자루로 송아지 등을 살짝 쳤다. 송아지는 깜짝 놀라 마루에서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송아지가 넘어지지 않으려 용을 쓰며 비명을 질렀다. 은영도 송아지 비명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집안이 송아지 울음소리와 은영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은영이 정신을 차리고 싸리비를 움켜쥔 채 마당으로 도망을 갔다. 송아지가 날뛰다가 장독을 깨면 혼이 날 게 분명했다. 송아지를 마루에서 내려오게 해서 마구간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은영이 대나무 빗자루에 의지해 마루의 송아지와 씨름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은영의 손에서 대나무 빗자루를 가져가 마루로 갔다. 송아지를 이쪽저쪽으로 몰아 순식간에 마구간으로 넣고 마구간 입구를 나무로 막았다. 뒤란에 가서 나무를 하나 더 가져와 송아지가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할아버지께서 대나무 빗자루로 마루를 쓸기 시작했다. 마당으로 흙이 떨어졌다. 은영은 수돗가로 가서 걸레를 빨았다. 저녁이 되자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엄마 아까 즈기 또 날뛰가지고, 내가 장독 깰까 싶어가 얼마나 놀랐는지 대나무 빗자루로 막았는데 안 되더라”

 “그래 우리 은영이가 오늘 욕봤네. 장독으로는 절대 못 가게 해야 된다.”

엄마의 말에 은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시 송아지가 마구간에서 나오면 밖으로 도망가리라 생각했다.

 며칠 뒤 동네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며 소가 뛰어다닌다며 집에 소 있냐고 물었다. 은영이 집으로 뛰어가 마구간을 봤다. 골목을 뛰어다니고 있다는 그 소는 은영이네 송아지였다. 또 탈출이다. 할아버지께서 반년은 지나야 코뚜레를 뚫을 수 있는데 저렇게 날뛰면 할 수 없이 목에 줄이라도 묶어야 한다고 하셨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과 식구들이 동네 골목을 돌며 소를 몰았다. 집에 도착한 송아지는 어미 곁으로 보내졌다. 골목으로 뛰어다녀 목도 말랐고 놀랐을 것이니 진정을 시키는 것이었다. 어미 소 옆에서 안정을 찾은 송아지를 일으켜 세워 튼튼한 밧줄로 고리를 만들어 목줄을 걸었다. 줄을 짧게 해서 겨우 여물통으로만 움직이게 최소한의 동선만 허락했다. 그런 모습을 어미 소가 큰 눈을 껌뻑거리며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 큰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잠자리에 누워 은영이 말했다.

 “엄마 이제 뛰 나오고 그리는 안 하겠제?”

 “줄이 풀리믄 또 나올 수도 있제 그렁께 줄 안 풀리게 꼴 줄 때 잘해야 된다. 불쌍하다고 줄 길게 하믄 안 돼.”

은영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던 어머 소의 큰 눈이 생각나 코끝이 찡했다. 마른기침하고 눈물을 참는 은영이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얼마 뒤 은영이네 송아지의 코에 코뚜레가 채워졌다. 코뚜레 상처가 아물자 할아버지는 송아지를 데리고 우시장에 갈 준비를 했다. 등긁개로 엉킨 털을 정리하고 꼴도 배부르게 먹였다. 원래는 어미 소를 팔고 송아지를 키울 생각이었지만 날뛰는 송아지를 식구들이 감당할 수 없었다. 은영이 장날 아침 마루에 앉아 우시장에 가는 송아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미 소는 마치 모든 일을 다 아는 것처럼 마구간을 돌며 슬프게 울고 있었다. 마당에 있던 은영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훔치며 부엌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어미 소는 온종일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슬프게 울기만 했다. 그 큰 눈을 껌뻑일 때마다 눈물이 떨어졌다. 잠자리에 누웠지만, 어미 소의 슬픈 큰 눈이 자꾸만 생각나 이불속에서 은영도 소리죽여 울고 있었다. 은영도 어미 소도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뒷산에서 들려오는 소쩍새 우는 소리만 마당 가득 슬프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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