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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May 19. 2024

남매의 긴 하루

잃어버린 소

 은영이 대청마루에 엎드려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더운 여름은 마당까지 아지랑이가 다가와 이글거리고 있었다. 매미도 더위를 참지 못하고 아침부터 목청껏 울어대고 있었다. 오빠가 숨을 헐떡거리며 상기된 얼굴을 하고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은영아, 우리 소 집에 안왔나? 소가 없어졌다." 

 "우리 소? 아침에 꼴 맥인다고 강에 갔다 아이가! 나는 소 못 봤다."

아침에 오빠가 꼴을 먹이러 끌고 나가는 것을 은영도 보았다. 강가에 도착해 버드나무에 코뚜레 줄을 묶어놓고 잠시 친구들과 놀다 오니 우리 집 소만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은영도 오빠를 따라 강으로 뛰기 시작했다. 강가에 있던 동네 남자아이들이 달려와 오빠 앞에 섰다.

 "느그 집 소 찾았나? 여는 아무리 찾아도 읍다. 니 인자 어짤끼고?"

 "느그는 강에 계속 있을 거 아이가! 혹시 우리 소 보면 나무에 좀 묶어놔라 알겠제"

 강가 언덕을 아무리 찾아도 우리 집 소는 보이지 않았다. 오빠는 강을 따라 윗동네로 가고 은영은 집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도 기운이 빠진 것인지 집은 너무나 조용했다. 한참이 지났지만, 오빠가 오지 않자 대문을 기웃거리다 혹시나 소가 동네 골목을 지났을까 싶어 골목을 나섰다. 그때였다. 강으로 난 뒷길에서 오빠가 있는 힘껏 속도를 내 뛰어오고 있었다. 오빠의 얼굴은 빨간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소는 왔나?"

 "아니 안 왔다. 우리 소 못 찾았나?"

오빠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일그러졌다. 눈물이 땀과 섞인 눈물이 오빠의 볼을 타고 내렸다. 오빠는 여름 햇볕에 까맣게 탄 손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은영도 오빠와 함께 울고 있었다. 한두 시간 있으면 해가 질 것 같아 오빠와 은영은 강가로 뛰어갔다. 강가에는 오빠의 친구들이 바쁘게 꼴을 베고 있었다. 오빠도 이 시간에는 꼴을 베어 포댓자루를 채우고 있었어야 했지만, 지금은 꼴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침에 할아버지는 오빠에게 소 잃어버리면 큰일 난다고 하시며 친구들과 놀러 다니지 말고 소 옆에 붙어 있으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은영과 오빠는 다시 동네를 뛰기 시작했다. 컴컴해진 골목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소를 찾는 게 더 급했다. 몇 바퀴를 돌아도 저녁이 된 골목은 조용했다. 낮은 담을 넘어오는 밥 냄새에 배가 고팠지만 은영과 오빠는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터덜거리며 집 앞 골목에 도착하자 대문 앞에 서 있던 엄마가 오빠를 보며 말했다. 

 "오빠 니 소 찾았나?"

 "아니"

오빠가 엄마를 보며 울먹이며 대답했다. 은영도 오빠를 따라 울음을 터트렸고 골목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엄마 오빠가 소를 잃어버릿다 는 데 우리 이제 우짜노? 할아부지 알믄 큰일 날 낀데 우리 쫓끼 나나?"

은영이 울면서 말을 했지만, 엄마는 걱정이 되지 않는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아끼는 소가 없어졌는데도 오빠를 야단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꼴 포대는 어디에다 두고 왔는지 물었다. 오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런 오빠에게 할아버지는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꼴 포대 두 개를 가득 채워 오라고 했다. 은영도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눈치를 보며 마당에 서서 떨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소가 집으로 돌아와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은영은 눈을 꼭 감았다. 소가 혼자 집에 찾아올 리도 없지만, 기적이라도 일어나 소가 마구간에 있었으면 했다. 은영이 마음을 졸이며 실눈을 뜨고 마구간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가 은영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은영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오빠 소 왔다. 소 마구간에 있다고 봐봐라. 빨리"

마당에 서 있던 오빠가 은영의 말에 놀라 마구간으로 뛰어갔다. 온종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너무나 평온하게 큰 눈을 껌뻑거리며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파리를 쫓으려 무심히 꼬리만 흔들 뿐이었다. 오빠는 다리에 힘이 풀려 마구간 앞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엄마 소는 누가 찾았는데? 어디 있던데? 몇 시간이나 우리가 돌아다녔다 아이가"

 "찾기는 누가 찾아 고삐가 풀린께네 돌아다니면서 풀 실컷 뜯어 묵고 밤 되니까 이슬 맞기 싫어서 집 찾아 온기지. 해가 져도 집에 안 들어오는 느그 보다 소가 더 똑똑하다 그자."

눈물로 범벅이 된 은영과 오빠가 수돗가에 앉았다. 세수하다 말고 마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눈물로 보낸 오늘 낮의 일들이 여름밤 별똥별처럼 은영과 오빠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낮에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뛰어다녔는지 은영과 오빠는 저녁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할머니의 부채 바람에 코를 골며 잠이 든 오빠는 꿈속에서도 꼴을 먹이러 소를 끌고 강가로 가고 있었다. 고삐를 잡은 오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은영도 콧노래를 부르며 오빠 뒤를 따랐다. 강가 길목에 있는 미루나무가 강바람에 쉼 없이 손뼉을 쳤다. 강물도 바람을 맞아 자갈 위로 하나, 둘 박자를 넣고 있었다. 은영과 오빠가 강가에서 물수제비 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때 나무에 묶어놨던 소가 갑자기 사라졌다.

 "오빠 소, 소 찾아야 된다. 엄마! 엄마!"

 "우리 소, 우리 소, 도망가지 마! 엄마. 우리 소 없어졌어! 엄마!" 

두 아이가 팔을 내저으며 잠꼬대를 했다. 꿈속에서도 은영과 오빠는 잃어버린 소를 찾아 강가와 동네를 헤매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부채질하던 할머니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앉았다. 깊어 가는 여름밤 매미가 목청껏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은영과 오빠의 긴 하루가 달빛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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