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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May 19. 2024

필살기

울지 않는 싸움꾼 가시나

 은영이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부지깽이로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벌겋게 타오르는 나무를 헤집어 아궁이에서 재가 날리고 매캐한 연기가 부엌에 가득 차 엄마가 연신 기침을 했다.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 맞고서도 부지깽이로 부엌 바닥을 계속 치고 있었다.

 “은영이 니 와 그라는데”

 “엄마 아까 애들이랑 싸웠는데 즈그들끼리 다 친척이라고 온 동네 가시나들이 나한테 잘못했다고 사과하라 안카나. 즈그들이 먼저 잘못했는데.”

동네 아이들이 친척이 아니라고 놀이에 끼워 주지 않아 은영이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은영 엄마가 안쓰럽게 은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맞은 사람은 다리 뻗고 자고 때린 사람은 다리 굽어 잔다. 그렁께네 싸우지 말고 또 그런 일 있으면 그런 것들하고 놀지 말고 빨리 집으로 온나”

은영이 엄마 말에 입을 삐쭉거리며 부지깽이를 부엌 바닥에 내려놓고 마당으로 나갔다. 화가 난 은영이지만 엄마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함께 놀아 줄 언니도 없어 한숨을 내 쉬며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날 은영이 머리가 산발이 된 채 대문을 들어섰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엄마가 뛰어나왔다. 은영은 놀란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분을 이기지 못해 계속 씩씩거릴 뿐이었다. 엄마가 은영의 얼굴에 난 손톱자국을 보자 은영의 엉덩이를 때리며 혼을 냈다.

 “이노무 가시나 얼굴이라도 멀쩡해야 시집이라도 가지. 이래가 시집이라도 가겠나?”

 “엄마 내가 이깃다. 저것들이 또 나한테 뭐라 한다 아이가. 그래서 내가 머리끄댕이를 먼저 했다.”

은영이 엄마를 보며 웃었다. 산발을 한 채 너무나 당당한 은영의 말에 은영 엄마도 웃음을 터트렸다. 헝클어진 은영의 머리를 빗겨주며 엄마는 은영의 싸움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키가 작은께네 까치발을 하고 머리카락을 쥐고 흔들었더만 지도 내 머리카락을 막 잡데.”

 “그래서 우쨌노? 니 울었나?”

 “아니, 나는 끝까지 참았지. 내가 끝까지 안 울고 참으니까 그기 썽이 나가지고 씩씩거리더만 바로 울데”

 “옆에 아들은 가만있더냐? 다 즈그들 사촌이라고 가만 안 있었을 낀데”

 “그기 우니까 한 명은 일라주러 집으로 뛰 가고 다른 아들은 나를 붙잡데. 머리카락 잡은 손 놓으라 카면서. 내가 누고 엄마 절대 안 놨다. 내가 머리 다 뽑았다. 자기 엄마한테 일라 준다 카데 나도 우리 엄마한테 일라 준다 카고 왔다.”

은영은 살짝 겁도 났지만,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가 있으니 쪽수로는 밀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웃으면서 집으로 왔고 머리카락을 더 뽑아 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싸움을 했던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은영의 집으로 왔다. 마당가운데서 은영과 은영 엄마도 마주 섰다. 은영이 머리카락을 다 뽑아놨다며 고함을 질렀다. 은영 엄마도 지지 않고 은영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보여주며 은영을 감쌌다. 마당 가득 두 엄마의 싸움 소리가 은영의 집 담을 넘고 있었다. 방에서 두 엄마의 싸움을 조용히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마당으로 나왔다. 은영 할아버지를 보자 놀랐는지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은영은 할머니의 꾸중을 피할 수 없었다. 한참을 할머니의 꾸중을 듣고 있던 은영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서며 은영 엄마가 말했다. 

 “은영이 고마 머라카이소 어무이. 그라면 뭐 은영이 머리카락 다 뽑히고 가만있으란 말 입니꺼”

엄마가 작은방으로 들어가 은영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손톱에 찍혀 살점이 떨어져 나가 딱지가 앉고 있었다. 흉이 질까 연고를 발라주며 은영에게 다시는 싸움을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다음날 골목에서 은영과 동네 여자아이들이 모여 어제 있었던 싸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은영을 둘러싼 아이들이 연주 편을 들며 은영을 몰아붙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은영도 지지 않고 아이들을 향해 쏘아붙였다. 골목이 순식간에 앙칼진 여자아이들 목소리로 시끄러워졌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은영의 집으로 두 개의 그림자가 화가 난 채 다가오고 있었다. 대문이 열리고 은영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은영아! 나와 봐라. 은영이 어딨노?”

방 안에 숨어 엎드린 채 문틈으로 마당을 보는 은영에게 할머니가 물었다.

 “은영이 니 또 아들이랑 머리끄댕이 했나?”

 “아니요. 머리끄댕이는 안 했어요”

 “그라믄 와 저녁에 너무 집에 와서 또 니를 찾노?”

 “머리끄댕이는 안 했는데 코피를 터자가지고….”

문에 바짝 붙어 문고리를 잡은 채로 은영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은영을 찾는 엄마의 목소리가 방문 앞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문고리를 잡은 은영의 손이 땀으로 젖어 미끌거렸다. 안방에 숨은 어린 은영에게는 필살기 하나가 더 생겼다. 은영을 지켜보는 할머니의 한숨소리도 천둥처럼 커져 갔다. 방문뒤 엄마의 그림자가 조용히 문고리를 당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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