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의손 May 19. 2024

우리 염소

이별 그리고 만남

 아침부터 은영의 집 마당에 동네 남자 어른들이 모여들었다. 새까만 염소 한 마리도 말뚝에 묶인 채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르신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해야 안 되겠습니꺼?”

 할아버지를 보며 말하는 남자의 손에는 아침 내내 수돗가에서 할아버지가 갈던 무쇠 칼이 쥐어져 있었다. 은영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몰라도 무서움에 안방 문고리를 잡고 문틈으로 마당을 내다볼 뿐이었다. 할머니는 부엌과 마당의 솥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엄마가 수돗가로 나가 앉았다.

 “은영 엄마요. 소주잔이나 사발을 갖고 오소! 얼른 안 묵으면 어리가지고 못 묵을 낀데.”

 칼을 쥔 남자가 엄마를 보며 말했다. 할머니가 수돗가에 주저앉은 엄마를 일으켜 염소 옆으로 데리고 갔다.

 “야야 눈 딱 감고 세 번만 삼키라!”

 할머니의 말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가 눈짓을 하자 동네 남자들은 염소의 목줄을 잡고 염소의 발을 묶었다. 염소는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아는지 큰 눈을 껌뻑거리며 버둥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은영은 안방에서 지켜보다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염소 비명과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가 안방까지 들려왔다.

 “어허. 참! 삼키라니까 그걸 못 묵어 가지고 아깝꾸로.”

 “숨이 끊기면 피가 어린다니까 얼릉 삼키소!”

 “야야 참고 삼키야지! 이 아까븐 거를 삼키라 얼릉!”

 마당에서는 더는 염소의 울부짖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방에서 나온 은영이 마당으로 내려가자 비릿한 냄새가 났다. 가만히 보니 염소는 마당에 누운 채로 가녀린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남자가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어르신 안 되겠네예. 그만해야겠는데예.”

 “피도 안 나오고 어리가 안 되겠네. 자네가 수고를 좀 해주게.”

 할아버지의 대답이 끝나자 남자는 날이 선 무쇠 칼을 잡고 염소의 목을 찔렀다. 핏물이 마당에 우두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누군가 물 한 바가지를 퍼와 남자의 손에 뿌렸다. 그러자 마당이 순식간에 핏물로 물들었다. 마당을 따라 흘러가는 비릿한 피 냄새에 은영은 연신 헛구역질을 했다. 남자가 염소의 배를 가르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이내 내장을 꺼냈다. 은영이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할머니는 방으로 들여가라며 손짓을 하고 부엌으로 마당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마당에 있는 솥에서도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연신 뜨거운 물을 퍼내고 있었다. 구역질과 흐르는 눈물로 기운이 빠져 방으로 들어와 누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강가로 데리고 나가 풀을 먹이던 염소가 마당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엄마 염소를 와 잡는데. 살아있는데 와 죽이는데 불쌍하구로 말도 안 하고 죽이나!”

 은영이 눈물범벅이 되어 훌쩍이며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다. 

 “염소 피가 빈혈에 좋다고 엄마보고 묵으라는데 비린내가 어찌나 나는지 못 묵겠더라. 니는 좀 있다가 염소 고기나 묵어라.”

 “잡아먹으려고 키웠나? 어제까지도 말도 안 해놓고 불쌍해서 고기를 어떻게 먹노!”

 “은영아, 염소 바꿨다 아이가. 저 뒷집이랑 염소 바꿨다. 우리 염소 아이다”

 눈물을 흘리며 고함을 지르는 은영을 엄마가 달래듯 말했다.

 울다 지쳐 잠이 깬 은영이 부엌으로 나갔다. 엄마와 할머니가 아침에 잡은 염소 고기를 삶아 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잠만 자지 말고 부엌일도 도와야지 인자 다 컸는데”

 은영에게 마늘 통을 안겨주는 할머니를 보며 은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좁은 부엌은 염소 고기 냄새로 가득 차 있었고 은영은 금방이라도 염소 생각이나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은영이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절구통에 마늘을 빻아야 하지만 마늘은 절구통에서 튕겨 나가 도망을 갔다. 은영도 부엌에서 도망을 가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오늘은 비린내 나는 집도 염소를 잡는 어른들도 싫어 훌쩍거릴 뿐이었다. 눈물을 닦으려 수돗가로 가 세수를 하다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눈이 따갑고 뾰족한 것으로 눈을 찌르는 것 같이 화끈거렸다. 죽은 염소 때문인 것 같아 겁이 난 은영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우는 소리에 부엌에서 엄마가 뛰어나왔다.

 “어이구 이 가시나야! 정신 안 차리나. 마늘 까다가 손도 씻도 안 하고 바로 눈을 비비면 그 눈이 어찌 되겠노 어!”

 은영이 온 얼굴을 찡그리며 억지로 눈을 떴다. 눈에서는 뾰족하고 따가운 눈물이 계속 흘렀다. 엄마가 은영의 얼굴을 씻기고 코를 풀었다. 눈동자는 마늘에 빨갛게 익었고 얼굴은 심통 난 놀부처럼 부었다.

 저녁이 되자 온종일 열리지 않던 가마솥 뚜껑이 열렸다. 염소 뼈를 곤 뽀얀 국물이 살짝 보였다. 은영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까만 가마솥이 눈물을 흘리던 염소 같아서 쳐다볼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 친구들과 강가에 놀러 갔던 은영은 눈에 익은 염소 한 마리를 발견했다. 큰 눈과 작은 뿔, 머리의 가마까지 분명 며칠 전까지 키우던 은영이네 염소였다. 새 주인이 달아둔 짧고 무거운 쇠줄 때문에 마음껏 뛰지도 못하고 멀리 나가지도 못한 채 말뚝 주위만 돌며 풀을 뜯고 있었다. 

 “그래도 니 우리 집에 있었으면 잡아묵었을 낀데 딴 집에 가서 살아있는 기다”

 가만히 다가가 염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평소 같았으면 ‘음매’ 소리를 내며 머리를 들이받고 줄을 풀고 도망갔을 테지만 염소는 그 자리에서 풀을 씹으며 까만 눈으로 은영을 쳐다볼 뿐이었다. 멀리 강둑에서 염소의 새 주인이 내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손으로 급하게 풀을 뜯어 염소 앞에 두고 집으로 향했다. 저녁이 되자 은영의 손바닥이 풀물로 시커멓게 변했다. 다음 날 아침 수돗가에 쭈그리고 앉아 시멘트 바닥에 풀물이 든 손가락을 갈아냈다. 마당 구석에 염소 목줄을 묶던 말뚝이 보이자 강가에서 봤던 염소 생각에 애써 눈물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훌쩍이는 은영을 보며 엄마가 말했다.

 “은영아! 니 염소 보러 가지 마래이. 주인이 싫어한다. 훔치 가는가 싶어가지고 어젯밤에 집에 왔더라. 그라고 풀물은 시간 지나믄 없어진다. 손에서 피난다. 고만해라!”

엄마의 말처럼 며칠이 지나자 염소의 눈동자같이 까맣게 슬프던 풀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장날이 되자 할아버지가 새끼 염소를 한 마리 안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눈이 크고 이마가 예쁜, 뿔도 나지 않은 작고 귀여운 새끼염소였다. 신이 난 은영이 염소를 보며 말했다.

 “할아부지 나가서 꼴 좀 해 올까예?”

꼴을 베고 있는 강가로 바람을 타고 ‘음매’하는 염소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낫을 쥔 은영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시원한 바람이 꼴을 베는 은영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꼴이 잔뜩 든 망태를 메고 집으로 달려가던 은영의 뒷모습에 강가의 버드나무들도 바람을 핑계 삼아 손을 흔들며 소리 내 웃고 있었다.

이전 12화 술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