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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May 19. 2024

기왓장

시집은 갔지만 흉터는 남았다.

 달빛도 잠든 깜깜한 밤 마루에 앉아 더듬거리며 신발을 찾고 있었다. 마실을 가는 할머니의 등이 조금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할머니를 찾아 마당에서 골목을 향해 힘껏 뛰다 얼마 가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비명을 질렀다. 식구들이 놀라 골목으로 나왔다. 할머니가 골목에 엎어진 은영을 일으켜 세웠다.

 “이노무 가시나 꼭 마실 가는데 따라나서제”

대문 앞 골목에 쌓였던 까만 기왓장에 찍혀 이마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엄마가 등짝을 후려치고 방으로 들어가 빨간약으로 소독을 했다. 그날 밤 은영은 이마에 작은 흉이 졌고 잠들 때까지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밤눈도 어두버가 이래 껌껌한데 뛰 달릿단말이가? 이노무 가시나가 큰일 날 줄도 모르고. 천지 분간도 못 하고 어짤란지 모르겠네!”

엄마의 잔소리에 잠이 오지 않았지만, 눈을 뜨지도 못하고 자는 척을 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조금 전 일이 떠올랐다. 밤눈이 어두워 할머니를 쫓아가다 대문 앞에 있는 기왓장 더미로 돌진하는 바람에 기왓장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 할머니가 장독에서 퍼온 된장을 피가 나는 이마에 바르겠다는 걸 엄마가 빨간약으로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랐다. 이마에서 피가 나 쓰리고 아팠지만 아프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세수를 하면 이마가 따가웠지만, 이마에 조금씩 딱지가 앉기 시작했다. 그런 은영을 보며 할머니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얼굴도 하얗고 곰보 자국도 없어서 시집을 잘 갈 수 있었을 낀데 이마에 저래 흉이 져서 이제 어디로 시집가겠노?”

은영은 할머니의 말에 걱정이 되었는지 얼른 딱지가 앉아가는 이마를 만져보았다.

 “할매! 이건 흉도 아니라니까. 시집 잘 갈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요”

당돌한 대답에 할머니는 멍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검은 딱지가 떨어지자 그날을 기억은 잊혔고 이마에는 작은 흉터만 남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은영이 다시 할머니의 마실 길을 따라나섰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더듬거리며 한발 한발 내딛는 은영의 밤눈은 여전히 어두웠다. 마당을 지나 손을 사방으로 내저으며 대문을 겨우 넘어섰다. 달빛에 의지해 골목을 지나고 있었지만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뒤통수가 찌릿하고 누가 뒤에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해졌다. 무서움에 엄마를 부르며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두어 걸음 가다 발에 걸려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또다시 기왓장이 무너졌다. 은영은 무서움에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울음소리를 들은 엄마가 골목으로 뛰어나왔다. 몰래 집을 나온 은영은 혼날 일이 무서워 울음을 그쳤다. 그때였다. 구름을 벗어난 달빛이 이마를 비추자 이마가 반짝거렸다. 엄마가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노무 가시나! 저번에도 엎어져 가 난리를 치드만 오늘 또 이라나! 니 박이 터졌는갑다. 의구 이 가시나가 죽으믄 어짤라고 이라는지 모르제!”

엄마는 은영의 손을 잡아끌며 걱정 같은 잔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서러운 등 뒤로 달빛만 비추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은영의 이마는 시커멓게 피멍이 든 채 부풀어 짱구가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가 멍든 피를 빼야 한다고 대바늘을 가져오자 손바닥만 한 바늘을 보고 놀라 도망을 쳤다. 엄마는 두 번이나 기와를 깨는 바람에 적지 않은 돈을 물어줬다고 했다. 갓 낳아 아직 따뜻한 달걀을 은영의 손에 쥐여 주며 멍든 이마에 문지르게 했다. 마루에 앉아 달걀로 이마를 문지르자 온몸 그날 밤의 아픔이 다시 몰려왔다. 열심히 이마를 문지른 덕분인지 시커멓던 멍이 퍼지면서 옅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눈썹 사이로 멍이 내려와 일자 눈썹이 되었다.

 할머니가 은영을 데리고 마실을 나갔다. 저녁 밤마실은 언제나 신났다. 간식도 먹고 재미있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에 한껏 들떠 깜깜한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쪽 발이 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너무 놀라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못하고 몸만 굳어져 갔다. 할머니가 은영의 양팔을 잡아 바닥에서 끌어 오렸다. 길 가장자리 오수로에 빠진 것이었다. 결국 마실을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수돗가에서 오수로에 빠진 다리를 씻었다. 여러 가지 오물 냄새로 헛구역질을 하는 은영을 엄마는 실눈을 뜨고 바라볼 뿐이었다. 턱이 찢어지고 팔, 다리는 긁혀 피가 나고 있었다. 엄마는 소독약과 연고를 가져와 발라주었다. 그리고 그날도 잠들 때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오수로에서 빠져나오려 버둥거린 탓인지 다른 사람의 몸이 된 것 같았다. 

다음날 친구들이 골목에 모여 상처투성인 은영을 놀리고 있었다.

 “앞짱구! 주걱턱! 시집은 다 갔네!”

 “야! 느그들 잡히면 죽는다! 야! 거기서라고!”

도망가는 친구들을 쫓아 다리를 절뚝거리며 골목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목 구석구석을 날아다녔다.

 며칠 뒤 골목에 있던 기와는 앞집 지붕 위로 올려졌다. 까만 기와가 올려진 지붕을 볼 때마다 그날의 아픔이 떠올라 몸을 움츠려졌다. 은영의 이마는 그 뒤로도 몇 번의 수난을 당해 지금의 이마로 완성되었다. 턱에도 그날의 흉터가 훈장처럼 존재한다. 


 이마로 기왓장을 깨고 오수로에 빠져 허우적대던 은영은 할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무사히 시집을 갔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나의 봉긋한 이마가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가끔 시골 본가에 가면 그때 그 기와가 올려진 지붕을 만난다. 할머니를 따라 밤마실을 가던 나와 백만불짜리 이마 탄생한 추억도 까만 기왓장처럼 아직 거기에 있다. 할머니가 생각나는 늦은 밤 어린 은영의 시간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이마에 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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