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경력자.
지난 주말 여동생과 함께 엄마가 계시는 시골에 다녀왔다. 고구마를 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장롱면허인 나를 대신해 시골까지 동생이 운전을 했다. 퇴근하는 나를 기다려 저녁 9시가 넘어 출발해 12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엄마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안방에서 같이 자던 우리 자매도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시골의 아침은 일찍 온다. 새벽 5시에는 일어나 움직여야 하지만 출근할 때 맞춰놓은 6시 알람에 겨우 일어났다. 엄마는 두 딸을 위해 새 작업복을 챙겨놓았다. 누가 봐도 장에 가서 산 새 옷이었다. 체크무늬셔츠와 고무줄이 단단한 몸빼바지를 입고 장화를 신었다. 선크림도 단단히 바르고 패션을 완성시키는 일 모자까지 썼다. 빨간 목장갑을 끼고 한 손에 낫을 들었다.
수풀처럼 올라온 고구마줄기를 보자 겁이 났지만 빨리 움직여야 했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낫으로 고구마 줄기를 쳐내고 줄기를 잘라 고랑으로 밀쳐 밟았다. 한고랑 한고랑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어느새 두둑의 비닐을 걷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고랑의 가장자리를 장화발로 밟아 평탄화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인내심을 가지고 고구마를 캐냈다. 깊이 박힌 고구마가 중간에 부러지기도 했다. 고구마를 창고에 넣고 옆으로 퍼져 썩어가는 고추까지 셋이서 훑었다. 엄마는 혼자였으면 그냥 말라죽게 놔뒀을 것이라고 했다.
그날 모든 것이 완벽했다. 흐리면서 바람이 불어 모기도 덜했다. 비록 장화가 작아 발가락이 끼이고 엉빵이 없어서 쪼그려 앉느라 무릎이 저려와 엉팡과 장화는 사야겠지만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집에 도착해 고구마줄기를 까고 엄마가 손질한 마늘을 절구에 빻고 풋고추를 다져 고춧물을 만들고 삶아온 고구마를 잘라 오븐에 말렸다. 열무를 씻어 김치를 담그고 가지를 잘라 가지전을 부쳤다. 작대기로 털어온 대추를 씻어 입에 넣는다. 역시 경력자의 맛은 달콤하다.
경력자가 괜히 경력자가 아니다. 경력자는 역시 경력자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