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했지만 또 병원입니다.
코로나가 만만해졌다고는 하나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존재이긴 한지 70 된 엄마의 목소리는 흡사 곧 돌아가실 것처럼 들렸다. 평소의 엄마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1+3을 하는 사람이고 타인의 시선을 매우 신경 쓰는 시골 촌사람이라 자식들의 입장은 관심이 없는 분이라 그려려니 했다.
출근하듯 일어나 동생네로 가서 아침 8시에 시골집으로 출발해 청소를 하고 냉장고 정리를 하고 몇 시간 동안 동동거리며 정리를 끝내고 엄마가 입원한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 사이에 몇 번이나 전화를 해서 필요한 것들을 말하고 오후 3시가 넘어가니 면회 오지 않을 것 같아 그랬는지, 늦게 온다 화가 났는지 병원에 오지 말라는 전화까지 했다.
막상 병원에 도착하니 부축 없이 혼자 걸어서 화장실을 다니고 우리가 가져간 사이다도 따서 마시고 목소리와는 달리 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코로나 격리가 끝나야 집이든 다른 병원이든 옮길 수 있을 것 같아 며칠만 참으라 당부를 하고 간호사실에 2단 박카스 한 박스를 안겨주고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침부터 운전을 한 동생은 지쳐 말이 없었고 나도 기운이 달려 침묵만 흘렀다. 네비 속 도착시간은 어쩜 그렇게 줄지 않는지 운전을 못하는 나는 동생에 대한 미안함만 커졌다. 내가 싸간 김밥 두 줄이 아니었다면 우린 종일 굶었을 것이다. 그 김밥 한 줄을 한 자리에 앉아 편하게 먹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움직이며 그저 허기만 버티면서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한 동생은 몸살이 났고 나도 힘들었는지 입술이 터지고 매일 하던 운동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8시가 좀 넘어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이장 아줌마가 엄마를 왜 그 병원에 두냐고 어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물론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사람이 있어 긴장을 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전화가 오면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니까 불안은 극에 달한다.
그렇게 주말이 신기루 같이 지나갔다.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출근해 구내식당에서 한 숟갈 뜨려는데 또 전화가 왔다. 노인맞춤 돌봄이라고 일주일에 한 번 엄마집에 방문해 주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그 병원에 엄마를 두면 안 된다고 병원을 옮기라고 전화를 받자마자 그런 말씀을 하시니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코로나가 오늘 해제되어 내일 퇴원 예정이고, 자식들이 없는 것도 아니고 면회까지 하고 왔고 매일 조석으로 간호사실에 전화해 상태를 체크하고 있는데 마치 다 죽어가는 엄마를 나 몰라라 방치는 천하에 없을 못된 자식이 된 것 같았다.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점심도 굶은 채 회사 앞마당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내 마음처럼 바람에 머리카락만 속절없이 헝클어지고 있었다.
아픈 노인을 혼자 시골에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누가 옆에 붙어 있을 수도 없어 오빠집으로 모시려 했으나 이번주에 도배, 장판을 하고 가구가 들어올 예정이라 오빠와 동생네가 사는 곳 근처 종합병원으로 입원할 예정이다.
아빠가 계셨으면 상황이 좀 나아졌을까? 아빠는 병원에 입원했었어도 늘 괜찮다는 말로 우리를 안심시켰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도 괜찮다고 하셨고 마지막엔 섬망이 와서 욕도 하고 발차기도 해서 간호사선생님들이 좀 힘드셨지만 그전까지는 미안하다고 하셨고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하셨는데 엄마는 70살이 되었는데 마음은 7살인 것 같아 속상하다.
엄마가 입원한 병원이 구관과 신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신관에는 자리가 없어 구관에 입원을 했고 30년이 넘은 건물이라 청결상태나 조명도 컴컴하고 화장실도 공용화장실을 써야 하니 몇 년 전 고관절 수술을 하며 두어 달 개인 간병인을 쓰며 극진한 돌봄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 엄마는 홀대받는다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몸이 아픈데 간병인도 없이 식판을 들고 움직이려니 서글픈 생각도 들어 더 우울하고 불안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이해도 되지만 그때와는 달리 코로나라는 특수 상황이고 네 명의 자식이 다 그렇겠지만 나도 멀쩡한 것 같지만 시댁에 남편에 자식에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자체가 미션이고 에너지를 쥐어 짜내 겨우 버티고 있는데 힘듦을 더하기 하는 엄마가 조금은 야속하다.
시골에서 엄마는 뇌수술을 두 번이나 한 중환을 격은 사람으로 각인이 되어 있었고 우리 4형제는 그런 엄마를 허름한 병원에 방치하는 천하에 나쁜 자식들이 되었다. 동네사람들은 그런 후레자식들을 보는 게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엄마는 뇌동맥류로 두개골을 절단해 스텐트를 두번 삽입했을 뿐이다.
결국 엄마는 오늘 오후에 아끼는 장남의 보살핌 속에 깨끗하고 비싼 종합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밥 먹기를 거부해 영양제를 달았고 중환은 아니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는 중환이 되었다.
나는 자식에게 숙제가 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