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부터 대부분의 가공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의 유통기한표시가 소비기한 표시로 바뀐다. 유통기한이 넘으면 왠지 먹으면 탈이 날 것 같지만 의외로 날짜가 지났다고 해도 먹어도 되는 음식들이 많다. 기쁨과 슬픔에도 기한이 있다고 느낀다. 특히 슬픔에는 유효기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부터인가 기쁨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된다. 슬픔에도 유효기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는 안타깝게도 그 슬픔에는 유효기간이 없는 것 같다. 기쁨은 어느 순간에 사라져 없어지는데 슬픔은 그렇지 않다. 때때로, 갑자기,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에게 나타난다. 그럴 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현자가 나타나 나에게 알려줬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오롯이 그 슬픔은 나의 몫이고 내가 감내해야 한다.
젊을 때는 무언가 내가 기뻐할만한 것들을 찾아서 했다.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고, 보이는 성과물을 내 나에게 보여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 보일 수 있는 것들로 할 수 있을 때 하자 생각하고 언젠가는 빛을 보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그렇게 20대를 시작으로 40대까지 하려고 노력했고 달렸다. 나를 벼랑 끝으로 밀고 밀어 성과를 냈다. 최단시간에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은 나를 학대하며 몰아붙이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나를 모질게 대했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들이라도 나에게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를 갈아 성과를 내고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면서 살아왔다.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안의 내가 사라지는 줄도 모르게 언제부터인가 기쁨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더니 노력과, 그 결과물과 기쁨의 정비례가 없어졌다. 노력한 만큼 기뻐서 충분히 기뻐야 해 하는데 기쁨의 기간이 너무 짧아져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도 가끔은 잊어 먹을 때가 있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이제는 무엇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괴롭고 힘들었다. 기쁨의 시간이 길어지려면 더 어려운 과정을 지나야 하는 것인지 고민도 해보았다.
과정이 더 힘들면 기쁨이 더 커질 것인가?
나는 그런 것들을 찾고 있나?
기쁘기 위해?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렇게 나를 갈고 갈아 애쓰던 것들이 다 무의미 해졌다. 내가 사라지고, 삶의 의미가 없어졌고, 모든 것이 하찮아졌다. 대신 다른 것이 나의 마음속에 자라났다. 슬픔, 우울, 불안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타인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배려도, 이해도 전부 사라졌다. 좌절감과 나에 대한 실망감,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나는 많이 슬펐다. 슬픔은 끝도 없이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끌고 갔다. 꿈인지 현실인지도 구분이 안 되는 깜깜하고 가늠이 되지 않아 더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갔다. 경력단절을 끝내고 어렵게 들어온 회사생활도 재미도 없고 무기력해져 갔다. 그래도 매일 기계처럼 출근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며 몸과 뇌를 힘들게 만든 덕분에 힘든 시간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눈물도 흘리고, 자괴감에도 빠지고, 타인들과 비교도 당하며 나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며 버텼다. 하루하루가 슬프고, 슬픈 날들이 계속되었다. 제발 슬픔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언제까지만 견디면 된다고 활자로 된 날짜를 누군가 도장처럼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누가 말이라도 해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부디 앞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은 슬픔은 짧게, 기쁨은 길게, 행복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죽었으면 좋겠다.
이제 나의 기쁨의 유효기간은 의미가 없다. 다만 덜 슬프고, 덜 아프고,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동안 나는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 같다. 목표를 정하면 언젠가는 해냈던 나였기에 나 자신에 대한 많은 기대와 당연함으로 잠시 잊고 있었다. 사실 지금껏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나는 다 해냈다. 내가 하겠다고 다짐하고 입으로 뱉은 모든 공부와 내가 하면 이루어질 것들을 나는 다 해냈다. 별거 아닌 것부터 다른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것들도 있고 한 번에 한 개씩 인적도 있었지만 한 번에 여러 개를 이루어 낸 적도 있었다. 그래서 피도 눈물도 없는 독한 사람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결혼 후에는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탓을 하는 사람들의 말이 진실 같기도 해서 죄책감이 들었다. 꼭 나를 갈아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되는데 경험을 하고 나서야 이 모든 걸 느끼다니 안타깝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실 40넘은 아줌마가 하고 싶은 걸 한다고 한들 뭘 얼마나 할 수도 없고 또 주위에서 그냥 그 하고 싶은 일들을 그냥 하게 놔두지 않는다. 삶은 항상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그것이 인생인 것이다. 피 끓은 20대 청춘이면 더 아파하고 그 아픔을 통해 배우고 자신의 내면을 성숙시키기를 바랄 수도 있지만 20대여도 30대여도 40대여도 슬픔은 짧기를 바란다. 더불어 기쁨은 두고두고 꺼내 쓸 수 있는 깊은 내면의 행복으로 저장하길 바란다. 나의 내면의 행복은 너무나 얇아 아래도 위도 다 비치고 물방울 하나에도 구멍이 날듯하여 아직은 행복을 좀 더 채워야 할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항상 모자란 나를 채우려니 인생의 하루하루가 너무 고단하고 힘들다. 이런 나를 아는 지인은 인지적 오류의 표본이라고도 하지만 늘 모자란 나라고 느껴서 어쩌면 더 열심히 살아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을지 고민을 한다. 원하던 공부를 하고 조직이 좋아 조직에서 쥐어 짜이며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월급은 스쳐가는 발자국으로 한 달을 또 살게 하고 카드값은 나의 힘의 원천이 되고 있다. 2/3 정도는 내가 꿈꾸는 삶을 누리고 있다고 본다. 누군가 나처럼 자신을 갈아서 무언가 이루려 한다면 지금 보다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길 바란다. 조금 더 나를 아껴주길 바란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아끼지 않으면 타인들은 더 나를 홀대한다. 흔히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배우자나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자사람아 줌마들은 챙김이나 돌봄을 받기보다는 돌봄을 하는 사람이니 나의 신체와 내면을 살리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세끼 고기반찬은 아니더라도 끼니는 잊지 않고 챙겨 먹고 영양제라도 먹어서 나의 정신과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를 챙길 사람은 세상에 딱 한 사람 나뿐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지금도 나를 갈아 무언가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글이 작은 통찰을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