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니 유전적으로 타고난 나의 손재주는 시간이 흐르고 세월에 익어 나를 더 나답게 하는 것 같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산에서 싸릿대를 쪄와 물에 불리고 껍질을 벗겨 말린 다음 그걸로 채반을 만들었다. 지금이야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채반이 돈만 주면 어딜 가도 있지만 그 당시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들과 대가족 속에서 부대끼며 살았던 그때는 물건도 돈도 귀했다. 농사를 지으셨지만 대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넉넉하지 않았고 한겨울에는 농사일이 뜸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싸릿대로 채반을 만들면 할머니는 머리에 채반을 이고 다른 지역에 팔러 다니셨다.
자랑 같지만 나는 손으로 하는 것은 비교적 잘하는 편이다. 손도 빨라 일의 속도도 빠르고 어릴적 제사로 길들여져 음식을 할 때도 겁이 없다. 나물도 한두 가지를 생각하며 만들다 보면 7~8가지가 되고 잡채도 딱 1인분만 해야지 다짐을 하며 만들지만 어느새 20인분 잡채 한 봉지를 다 쓴다. 김치부침개 1장만 해서 먹어야지 생각하지만 온 아파트를 다 돌려도 남는 양이되고 만다. 모자라는 것보다 남는 게 마음이 편하고 또 먹고살자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데 먹는 흐름은 끊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늘 이모양이다. 어린 시절 한 달에 한두 개씩 제사를 지내던 엄마를 도와 어지간한 건 어깨너머로 배웠었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나는 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지었었다. 거짓말 같겠지만 겨울이면 깡깡 언 얼음을 돌로 깨고 맨손으로 빨래를 했었다. 그 당시엔 그랬다. 수도도 없고 우물물을 길러야 하는데 우물물을 길러 쓰는 것보다는 강에 가서 빨래를 해 오는 편이 더 편했다. 그렇게 엄마가 하던 시집살이는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 후로 곤로, 연탄, 가스레인지, 전기밥솥, 압력밥솥으로 밥을 짓게 되었다. 할머니는 집안일을 거의 나에게 시켰었고 그 어리고 작은 여자아이는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 밥도 하고 국도 끓이고 나물도 무쳤다. 7~8살짜리 여자 아이가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밥을 지었는데 집에 돌아온 어른들은 국이 없고 반찬이 없다며 엄마에게 쓴소리를 했다. 그 쓴소리는 고스란히 나에게 넘어 왔다. 다른 집 친구들은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설거지도 안 하지만 나는 밥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욕도 들었어야 했다. 지금의 나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그 당시 어린 나는 많이 서러웠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나의 감정은 가끔 그 시간에 멈춰 슬플 때도 있다.
가난했지만 가난이라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다녀간 후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제일 못 사는 집이 우리 집이라고 말을 해서 나는 우리 집이,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창피하지도 않았었다. 내가 가난하다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이후 시간이 지나고 내가 물질과 환경에 대해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없이 사는 사람이 부끄럽고 창피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직업이 선생인 사람인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나를 정말 가난한 사람으로 만들다니.
신의 손처럼 전지전능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타노스의 손처럼 한 번의 움직임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세상에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이 되고 싶었다. 신의 손님으로 대우받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신의 손이다. 사람이 감히 신의 손이라니 웃기기도 하지만 그런 내 손이 좋다. 기운이 나지 않을 땐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나는 '신의 손'이니 잘할 수 있다고 나에게 긍정 신호를 보낸다. 음식도 미싱작업도 빵도 과자도 디자인도 공부도 모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그건 욕심이고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을 때 실수하지 말고 무사히 완수해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신의 손처럼 내 스쳐가는 손길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었으면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신의 손(님)으로 신을 만날 테니 그날의 나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손을 움직여본다. 나의 직업이 어쩌면 신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을 살아내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신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중 하나이길 바라본다. 나는 오늘도 신의 손으로 글을 쓰고 월급을 벌고 자식을 챙기고 나를 챙긴다. 신의 손을 가진 여자사람아줌마로 또 하루를 살아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