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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Oct 30. 2023

당신의 내면아이는 몇 살인가요?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는 나.

 오랜만에 지인과 통화를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 봉사활동을 1년 넘게 하시다가 강의 갔던 곳에서 인연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더니 아기까지 낳아서 친정에 왔다고 한다. 간간이 소식은 들어 결혼식장에도 갔었지만 통화를 한건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내가, 내 목소리가 너무 부드러워졌다고 하는 말에 그냥 웃으면서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고, 논문 쓰고 대학원 안 다니니 마음이 편해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칭찬인데 왠지 어색하다. 나는 누가 나를 칭찬하면 그 칭찬을 칭찬 그대로 보지 않고 내가 모자라서 저렇게 말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나에 대한 비합리적 신념과 자기 비하가 좀 많이 심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그런 나를 알고 나의 내면아이도 키워왔기 때문에 예전과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칭찬을 칭찬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태어날 때부터 둘째로 일만 하고 모든 것을 양보하는 게 당연한 남아선호사상이 넘쳐나는 시골 대가족사이에서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몸과 마음에 베인 모양이다.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삼촌과 살다 보니 말 안 듣고 성질을 내는 아들 아닌 딸인 나는 할머니 눈에 가시였을지도 모른다. 공장에 가지 않고 공부를 한다는 내가 얼마나 밉고 미웠을까?


 어쩌면 지금 나의 공부에 대한 허전함이나 채워지지 않는 욕구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골에서 딸이 9명인 집의 큰딸인 친구도 고등학교를 당연하듯 가서 대학교도 다녔는데 나는 첫딸이라는 이유로 동생들을 건사하고 집안의 주춧돌이 당연히 되리라 생각했던 아버지의 기대를 무참히 밟고 몰래 고등학교 원서를 섰었다. 고등학교 면접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같이 면접을 보러 가는 동네 친구가 아빠에게 말을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비 오는 날 마당에 내 책과 가방을 다 내던졌다. '가시나는 공부해도 아무 필요 없다'는 이유였다. 결혼하고 시집가면 자식 잘 키우고 남편 밥이나 하면서 살면 된다고 공부는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지금 이렇게 했다면 아동학대로 집안 식구 모두 실형을 받았을 텐데 그때는 교육을 핑계로 심리적, 신체적 폭력이 정당화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삐뚤어진 나의 자아는 자라지 못한 채 중학생으로 머물러 있었다. 다행히 대학원에서 심리를 공부하면서 나의 내면아이를 조금씩 키워 왔다. 고등학교에 입학시키고 고3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졸업반이 되고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냈던 나의 내면 아이는 이제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멋지게 사회생활도 하고 싶고 연애고 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 풋풋한 직장인이 되었다. 아직 20대를 지나고 있지만 내가 나를 보듬어 주니 마음이 편하다. 내 마음의 상처에 대해 사과라도 받고 싶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고 아빠도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엄마는 나의 이야기에 자신이 더 힘들었다 말하는 바람에 대화 자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키운 내면아이가 사회초년생이 된 것이다.


 한해 한해 나는 발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타인을 밟고 낮추어 나를 높이는 대신 주변을 사람들을 챙기고 상대방의 불필요한 반응에도 과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적어도 남 탓은 하지 않는 어른이 되기로 했다. 사실 세상의 모든 문제의 답은 자신의 내면에 있다. 나도 처음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내면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먹고 나 자신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성찰을 하면서 모든 답은 내가 쥐고 있었지만 그걸 몰랐던 것뿐이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나 자신을 믿고 밀고 나가는 힘이 생겼다. 사실 내가 한 선택이 다 좋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한 선택이니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엎어진 채로 있으려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내가 평온을 얻고 행복하다면 남들의 시선 따위는 생각할 필요 없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니 성공한 삶이다.


 내가 집안의 지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부를 한다고 혼나고 죄를 지은 것처럼 움츠려 들지 않고 어린 나이에 매몰찬 사회로 내던져지지 않고 공부를 계속했더라면 지금 보다는 좀 더 커리어를 쌓고 인생을 즐기며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는 비겁한 행동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어쩌면 나를 위한 시간을 살았을 것이다. 주변에 휘둘리지도 않았을 테고 나 자신을 좀 더 아끼고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나를 위해 사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가끔 사람들이 나에게서 여유가 느껴진다고 할 때면 기쁘다. 조급한 과거의 내가 조금은 사라진듯해 뿌듯하다. 조금씩 나를 위해 내가 온전히 살아가는 것 같다. 칭찬을 칭찬으로 듣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늘 그렇듯 나는 모자란 사람이고 또 그런 취급을 받아 왔으니 칭찬은 칭찬이 아닌 욕이었고 질책이었다. 그게 당연했다. 세상에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존재인데 나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나는 이제 그렇게 살지 않을 테니 내 걱정은 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웃음을 주고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며 나의 내면아이를 키워 내며 세상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는 여자사람아줌마로 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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