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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Nov 04. 2023

1mm 높아진 콧대.

남편의 금지어.

결혼 후 애석하게도 대략 6개월이 지나자 남편의 콩깍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을 무한 신뢰하며 남들이 뭐라고 해도 심리적, 경제적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얼마나 멍청했냐 하면 사업을 한다던 남편이 결혼과 동시에 백수가 되어 친구들과 기분 낸다고 들른 단란주점 술값까지 내주었다. 당시 내 월급은 실수령액이 100만 원이 되지 않았다. 30만 원이 넘는 술값을 내고 나니 관리비 내기도 빠듯했다. 20년 전의 일이다. 이런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니 사이는 더 불편해져 갔다. 싸움은 더 잦아졌고 대화는 끊어졌다.


 부부사이가 틀어져도 부모는 자식일에 중간이 없다. 모르면 몰랐지 일단 자식일이라면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협동심과 동질감으로 뭉치게 된다. 13개월 터울의 두 아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며 돌아가며 학교로 부를 때가 있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학교에 가야 할 때도 있었다. 하루는 가해자, 하루는 피해자. 내가 볼 때는 아무 일도 아닌데 내 자식이 혹은 상대 아이가 일을 크게 만들었다.  보통은 선생님의 중재로 부모들끼리 잘 마무리가 되어 없던 일이 되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와 지금의 학교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었다. 선생님께 뺨을 맞고 빠따로 엉덩이를 맞아 피멍이 들고 아이들끼리 싸워 이가 부러져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학교생활을 한 나의 학창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나는 내 자식도 중요하지만 상대 아이도 중요하다고 생각되기에 최대한 중간이 있는 부모이길 선택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을 남편에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내 자식일만 해도 머리가 터지는데 시어머니 자식의 머릿속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었다. 힘든 고비를 또 넘기고 집으로 들어오면 내가 부모로서 잘못된 선택과 행동을 했다고 질책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나의 행동이나 말, 하다못해 걸음걸이까지 트집을 잡아 배려 타령을 했다. 나는 항상 가족을 위해 배려를 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 끝은 항상 '무식해서'로 끝났다.


 '무식'이라는 단어는 나의 마음속 결핍의 스위치였다.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큰 나였기에 더 마음이 쓰라렸다. 직장생활을 하고 나서도 독박살림은 변함이 없었다. 차라리 출근하는 게 휴식이었다. 커피 한잔 마실 시간이 있고 점심도 제공받고 존댓말로 내 이름도 불러준다. 직장에서의 나는 전혀 무식한 존재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잘하는, 잘 해내는 능력자였다. 나에게 씌워진 무식의 프레임을 뒤집을 기회는 우연히 내게 찾아왔다. 회사에서 봉사하시던 선생님의 이끌림으로 2019년 대학원 원서를 넣었고 대학원생이 되었다. 퇴근 후 대학원 수업을 듣고 과제를 준비하고 PPT를 만들며 공부를 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야근도 하지 않았고 비대면 수업으로 학교까지 가지 않아도 돼서 편하기까지 했다. 방문을 잠그고 공부하는 그 시간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마지막 학기는 논문을 쓴다고 새벽 4시까지 노트북과 씨름을 하고 아침 7시에 출근을 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18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 심사를 끝내고 나는 가족 중 최고 학력소유자가 되었다.


 남편은 이제 무식하다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더 이상 무식하게 만들지 않았다. 지나고 보면 나도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 같다. 흘려들으면 될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쿨하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내 마음의 크기는 내 손톱보다 작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그런 대접을 받지 않게 나 스스로 나를 일으켜 세우고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리고 논문 쓴다고 새벽에 울면서 초코바 먹으며 찌운 살들도 작년에 홈트를 하며 10kg이나 깎아내서 나는 지금 내 평생 최저 몸무게로 살고 있다. 결혼 후 살찐 나에게 늘 하던 '돼지 같은'과 '무식해서'라는 두 단어는 남편에게 금지어다. 아니 그 단어가 이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바른말일 것이다. 가끔 나는 남편에게 '무식해서'나 '돼지같이'라는 단어를 넣어 말할 때가 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자연스럽게 한마디 던질 때면 얼마나 통쾌한지 모른다. 울그락 불그락하는 얼굴과 뭐라 한마디 하고 싶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당황하는 모습을 촬영이라도 해서 힘들고 슬플 때 보고 싶을 정도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이다. 몸도 마음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그 과정은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기도 하다. 박사학위 도 아니고 석사학위와 10kg 체중감량이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홀대하는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는 노력을 나 스스로 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타인에게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에 나 자신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나는 이제 콧대가 1mm는 높아진 여자사람아줌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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