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의손 Nov 30. 2023

세상은 넓고 사기꾼은 많다.

진실 넘어 그 어딘가.

 큰아들의 수능을 앞두고 둘째 아들이 방을 얻어달라고 졸랐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남편은 무슨 생각이 있는 것인지 알아서 한다고 했다. 아들의 조건은 집 근처에  빨래방, 독서실과 가까워야 하고 외진 곳이 아닌 조용한 곳의 원룸이었다. 우리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신축 대단지 아파트라 근처에 빌라나 주택이 많아 집 근처에 원룸을 구하는 것은 어렵진 않았다. 그러나 집 놔두고 굳이 집 앞에 원룸을 구해 나간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아들은 주말에도 평일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집을 보러 다녔다.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반대는 반대를 위한 비효율적 에너지 소비만 될 것이 뻔해 입 한번 떼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내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두 사람은 알았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보내고 있았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준비를 하는 내게 둘째가 지나가듯 집 보러 다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둘째는 눈뜨고 코 베어 가는 게 부동산이라며 절대 믿으면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세 곳 정도 다녀왔는데 첫 번째 간 곳은 방은 넓은데 창이 너무 작고 볕이 잘 들어오지 않아 싱크대에 음식물인지 곰팡이가 썩어 있고 냄새가 너무 심해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악취와 바닥에 얼룩도 있어서 사람 죽어난 집이 아닌가 싶었다고 한다. 가구도 하나 없는 방 하나가 너무 커서 좋지만 냄새는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두 번째 집은  지금 아들의 방 만한데 월세가 너무 비싸고 무엇보다 주인이라는 사람이 방을 보고 있는 도중에 바쁘다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근저당도 잡혀있고 덩치가 있는 아들이 혼자 생활하는 집이라고는 해도 너무 작고 옆집의 소음이 고스란히 들려와서 다른 집을 보기로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마지막 집은 시세보다 비싼 전세금과 월세를 요구하는 전형적인 전세사기 같아 꺼림칙했다고 한다. 남편과 아들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전세금과 월세를 '특별히' 깎아준다고 했단다. 이미 남편이 등기부 등본을 조회한 터라 사기꾼이 어디까지 이야기하나 옆에서 듣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세 곳의 원룸 투어를 마친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시끄럽고 집중이 안 돼 힘들었던 방이 5성급 호텔 처럼 너무 좋게 보여 놀랐다고 한다. 사실 우리집의 위층은 여자아이 한 명과 쌍둥이 둘이 있어 밤이면 많이 뛰고 주말에는 더 뛴다. 평소 같으면 참아지는데 시험기간이나 또 중요한 실기대회가 있는 시즌이면 예민해져 나도 모르게 위층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오기도 했다. 한참 크는 아이들을 묶어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안 할 수도 없고 나름 생각해서 방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방을 얻어 나가겠다던 아들은 더 이상 방을 얻어 달라는 말이 없어졌다. 룸 서비스같이 늘 정리된 방, 깨끗한 침구와 서랍 속에 정리된 옷과 속옷들, 아무리 써도 다음날이면 채워져 있는 수건 서랍, 늘 차고 넘치는 냉장고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건조까지 해 뽀송해진 빨래를 개켜 방문 앞에까지 배달을 해둔다. 물론 방을 비웠을 때는 옷장에 정리도 하지만 사춘기를 지나며 방안은 오직 방주인이 열 때만 들어간다. 말만 하면 척척 나오는 엄마 서비스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그래서 여름이고 겨울이고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45평의 넓고 쾌적한 신축 아파트 생활이 어쩌면 아들에겐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하니 남편은 다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말 안 듣는 아들을 설득을 하기보다는 세상을 직접 보고 느끼게 하는 게 돈도, 에너지도 아낀다는 생각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남편은 아들을 정말 내 보낼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결론적으로는 집에서 다시 살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너무나 당연한 엄마의 오만가지 서비스를 어느 정도는 고마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윗집은 여전히 쿵쾅대고 있고 아들의 스케줄도 여전하다. 다만 변한 건 아들의 마음이다. 마음의 자세가 조금은 변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고 부모의 그늘이 좋다는 것을 조금은 느낀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은 설거지도 하고 먹은 컵이나 그릇은 싱크대에 담아 물을 틀어놓는 하찮은 서비스를 나에게 하기도 한다. 빨래를 빨래통에 넣게 하는데 3년이 걸렸던걸 생각하면 고마운 생각마저 든다. 




 아들은 남편이 그런 집만 골라 보여줬다는 걸 알까? 세상을 모르는 너무 순진한 아들을 세상에 찌들 때로 찌든 남편이 손안에 두고 흔들어 제 자리에 둔걸 말이다. 아들아! 세상은 넓고 사기꾼은 많다. 그리고 제일 가까운 사람이 그 사기꾼일 수도 있단다. 너는 아직 멀었다. 입시공부한다고 이젤에서 그림만 그리지 말고 세상을 보는 큰 그림도 그렸으면 좋겠다. 그래도 한 집에 사니 엄마는 좋구나.


작가의 이전글 첫 수능이지만 삼수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