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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Jan 27. 2024

냉장고 채굴

오! 보물 발견

  언제부터인가 장보기는 거의 하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반찬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김치냉장고 한 칸을 비웠다. 감자, 당근, 양파로 가득 차 있던 김치냉장고가 가벼워졌다. 동생은 나를 구황작물에 미친 사람처럼 감자나 고구마를 먹는다고 웃으며 말하지만 사실 맛있어서 먹는 것이다. 나는 보기 보다 입이 짧고 비위가 약하다.

 오늘도 김치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내가 만들어 놓은 보물들을 찾아냈다. 아까워 아낀다고 넣어두고는 잊어버렸다. 작년 여름까지도 잘 먹었는데 잊고 있었다. 냉동실에서 돌덩이처럼 얼어 있으나 작년 여름까지 잘 먹었던 그 맛이 되살아나 침이 고인다.


탄산수에 넣어 마시던 청귤. 겨울엔 따뜻한 꿀과 함께 먹으면 그렇게 상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감 말랭이와 오븐에 구운 고구마인데 하나씩 데워 먹으면 이것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동생이 준 말린 사과대추. 아무도 안 주고 나 혼자 먹는 나만의 간식 같은 주식을 오늘 다시 찾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나는 간식을 끊었지만 구황작물이나 당근, 대추, 감, 무같은 시골스러운 것들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아서 그런지 땅에서 자라고 땀 흘려 키운 것들이 좋다. 대형마트에 파는 물건들처럼 세련되지도 않고 흙도 묻어 있고 밑손질도 많이 필요하다. 귀찮지만 내 손으로 씻고 깎고 자르고 거기다가 기다림도 있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저런 것들만 먹고 자라서 그런지 키는 작아도 뼈는 통뼈다. 비록 과지방 1단계이긴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인바디 기계가 잘못된 건지 1년 넘게 인바디를 재왔지만 과지방 1단계는 첨 봤다. 하여간 음식과 다이어트는 참 아리송한 것 같다.

 금요일밤 김치냉장고에서 찾아낸 나의 보물들. 보고만 있어도 흐뭇하고 배가 부르다. 냉장고는 정말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보물창고 같다. 잊고 있다가 가끔 이렇게 나타나 주면 감사하다. 잊고 있던 과거의 나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다. 직장에 다니며 살림을 하는 게 쉽기도 어렵기도 힘들기도 하다. 간혹 이렇게 보물들이 나타나 주면 기분이 좋다. 사실 다 조리되어 있고 입으로 넣기만 하면 되는 것들이라 술안주가 되기도 좋다. 감기가 아직 다 떨어지지 않아 술은 자제하고 있어서 아쉽다.




보물창고에서 보물 한 보따리 찾아서 기쁜 주말이다. 금요일밤에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냉장고 탐험을 추천한다. 과거의 내가 너무나도 잘 만들어 놓은 보물이 분명 잠자고 있을 테니. 그리고 저건 다 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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