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완벽주의를 포기했습니다

사르트르를 논하던 그와 국숫집에서 다시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by 유수연

나는 허당이다. 머리를 굴리느라 굴리는데, 늘 치밀하지가 못해서 금방 들통나거나, 제 꾀에 제가 넘어가 곤욕을 치를 때가 많다.


어릴 때는 언제나 엄마가 한 수 위였기에, 잔머리를 쓰면 쓸수록 손해였고, 약간의 일탈에도 불호령이 떨어지는 권위적인 분위기에 눌려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정쩡한 완벽 추구형’의 인간이 됐다.


기본이 허당인데, 이성적이고 정확성을 요구하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항상 나의 주변에는 예기치 않은 일이 많이 벌어졌다.


한 번은 업무 관계로 패기 가득한 어떤 사람과 만난 적 있었다. 마치 무대에서 막 내려온 햄릿 같은 목소리에 현학적인 인물이었다.


그때 나도 만만치 않게 허세가 충만했고, 어깨 뽕이 차오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 순간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억 안 나는 어느 프랑스 영화에 대한 감상이 삶의 철학으로 번지고, 불교 경전을 넘어 사르트르, 니체의 ‘무신론’까지 발전했다.


토론에 절대 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알량한 지식의 바닥을 박박 긁어가며 열을 올렸다. 제대로 알지 못하며 떠드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날 우리의 의미 없는 개똥철학은 종업원이 잔뜩 싫은 표정으로 거칠게 몇 번이나 물컵을 채워 주고 창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됐다.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할까요?”


갑자기 퀭해진 눈으로 그가 물었다. 우리가 앉아 있던 찻집의 2층에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었다. 잠시 위층을 올려다보는 그 시선을 피하며, 나는 허세의 최정점을 찍었다.


아, 죄송하지만, 이제 저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요.”


왠지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으면 기선을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뜬금없이 식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상대도 지고 싶지 않았는지,


아. 그러세요? 잘됐네요. 저도 사실은 호텔 쪽에 모임이 있어요.”


그렇게 나와 햄릿은 승리의 미소를 가득 머금고, 찻집 앞에서 헤어졌다.


어스름한 저녁 길. 어디선가 눈발이 흩날리고, 길가 레코드 가게에서는 애절한 ‘If you go away’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배도 고프고, 뭔가 따뜻한 것이 먹고 싶어졌다. 골목 근처 불빛이 유난히 흐린 국숫집이 보였다. 뭔가 감성 충만한 마음이 되어, 국수를 삶는 솥단지까지 뿌연 그 허름한 가게로 빨리듯 들어갔다.

살짝 맹맹해진 코를 훌쩍이며, 주문한 어묵국수를 한입 먹으려던 그때, 가게의 유리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밀려 들어오는 찬바람과 흰 눈… 오늘 하루 동안 눈에 익은 저 체크 목도리.


햄릿이었다!!


순간적으로 마주친 눈. 당황한 듯 어쩔 줄을 몰라하는 그 모습은 햄릿이 어머니 거트루드가 숙부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하는 장면 그 자체였다.


조금 전, ‘오늘은 약속이 있다’라며 폼 잡고 헤어졌는데,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이 낡고 허름한 국숫집에서 다시 만나다니….

민망함을 견디지 못한 나의 웃음이 먼저 터져 나왔다. 그냥 아무렇게나 웃었다. 웃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이때 내 웃음소리는 아마 전원주가 ‘밤의 여왕’을 부른다면 딱 그 음역대가 아니었을까 한다.


이처럼 나는 세상의 그물에 잘 걸린다. 뭔가 꼬리가 밟히고 흔적이 남아 완벽하게 끝나는 일이 거의 없다.


20대 초반에 취직한 직장에서는 다른 직원들과 잔업을 해야 할 때 상사에게 거짓말을 하고, 땡땡이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뭔가 허술한데도 나름 요리조리 요령껏 뭔가 ‘무언의 룰’이 있는 듯했다. 신입 주제에 나도 그 방법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

잔업 처리 후 현지 퇴근’이라는 핑계를 대고, 친구들과 명동에서 만나 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날 내가 타고 가던 버스가 오토바이와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젤 뒷자리 가운데 있던 군인이 내 발 앞으로 우당탕 떨어지면서 나도 의자 쪽으로 쓰러졌다. 팔꿈치와 무릎에서 약간의 피가 흘렀고, 근처의 몇몇 사람들이 내게 몰려와 “병원, 병원!”을 외쳤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무조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곤 달렸다. 시큰거리는 팔다리가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신문에라도 나면 큰일이고, ‘회사 땡땡이치다 사고 났다’라는 복잡한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나는 쑤시고 아픈 발목과 무릎에 약을 바르고 주무르면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


“왜 자꾸 나만 걸리냐고…. 더 큰 거짓말들은 다들 빠져나가는데, 이거 정말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냐고….”


억울해서였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후배들의 ‘거짓 보고’와 ‘업무태만’을 잡아내는데 도사가 되어 있었다. 나름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어 빠져나가지 못하게 시어머니처럼 닦달하고 단속했다.


그렇게 ‘까칠 선배’, ‘독한 상사’ 별소리 다 들어가며 일했지만, 결과적으로 남몰래 사내 연애하고 퇴사를 반복하는 직원들의 탈선은 다 놓쳤다.


거짓으로 가득 찼을 업무일지와 청첩장을 함께 들이밀며 꽁냥꽁냥 ‘축복해 달라’는 사내 커플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만든 그물에 걸려 정작 잡아야 할 것은 모조리 놓쳐버리는 못 말리는 허당… 헛똑똑이….


그때 나는 내가 허당의 굴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유형의 인간임을 확실하게 인정했다.


어정쩡한 완벽을 포기하니 속 편하긴 한데, 매사 원칙주의자인 남편은 평생 나의 ‘뒷수습 전문 매니저’로 지금까지 고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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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속에 흩어져 있던 글들을 모아 새 옷을 입혀주는 중입니다. 리뉴얼이라는 이름으로 슬쩍 다듬었지만, 여전한 저의 허당기는 숨길 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