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펜으로 지은 감성 컬렉션

패션과 시가 만나면 벌어지는 일

by 유수연

30년간 저는 패션의 최전선에서 사물의 '표면'을 기록해 왔습니다. 화려한 런웨이의 조명, 정교한 테일러링의 슈트, 그리고 매 시즌 무서운 속도로 쏟아지는 트렌드들….


기자수첩이 두꺼워질수록 제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습니다. 옷의 혼용률과 브랜드의 가치는 선명하게 읽어냈지만, 그 옷을 입는 인간의 '시린 속살'까지는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인의 마음으로 패션을 다시 읽으려 합니다.

패션과 시는 서로 먼 대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뿌리를 공유합니다. 패션이 몸을 감싸는 가장 바깥의 언어라면, 시는 영혼을 감싸는 가장 안쪽의 의복입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합니다. 그 설레는 마음으로 이제는 시 한 줄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패션 쇼윈도를 탐닉하듯 시의 문장을 향유하고, 명품 가방의 디테일을 살피듯 시어(詩語)의 질감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패션은 일상이 되었고 시는 낯설어졌습니다. 익숙하지만 기품을 잃어가는 패션, 그리움은 여전한데 멀어져 버린 시. 수많은 트렌드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가지만, 결국 남는 것은 당신이 그 옷을 입고 통과한 '시간의 문장'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옷장은 우리가 매일 아침 쓰는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시집(詩集)입니다.

유행은 타인의 시선일 뿐이지만, 당신의 마음을 닮은 옷 하나를 골라 몸에 걸치는 순간, 옷 입기는 단순한 ‘필요’를 넘어 삶의 ‘철학’이 됩니다.


이 연재가 당신의 옷장 속에 숨겨진 감성의 본질을 찾아가는 다정한 여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