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뭐라고

by 숨비소리

"adhd약을 증량하고 싶은데요. 요즘 집중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의사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우울증과 번아웃을 진단받은 그 순간부터 의사는 내게 adhd약을 먹지 말자고 했다.
안 그래도 다 써버린 에너지를 더 쓰게 만든다고.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딸아이와 함께 지내려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adhd약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우울증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유는 상관없다.
나는 똑바로 서있어야 한다.

"요즘은 기분이 좀 어떠세요?"

우울증약도 함께 늘리는 조건으로 나의 증량에 마지못해 동의를 하며 의사 선생님이 묻는다.

"잘 모르겠어요. 요즘은 내 기분이고 뭐고 그런 건 상관없고 그냥 무조건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사실에만 집중하고 있어서요."

"상담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던데요. 이렇게 주변에서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견디냐고요. 항상 자기가 제일 뒷순위인 사람이라고도 했고... 할 말은 하고 살라고도 했고... 그냥 억지로 버티는 느낌이라고 했어요. 속은 텅 빈 채 껍질로만 서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 사고도 있다고 하셨어요."

의사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바쁘게 움직인다.
키보드의 다그닥 거리는 소리는 언제나 듣기 좋다.

"좀 쉬세요. 요즘 아이가 등교를 안 하고 있어서 쉴 시간이 없긴 하겠지만 낮에 어디라도 한 군데 보내고 그동안이라도 좀 쉬어야 해요."

라고 말하는 의사는 마치 친한 친구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듯 동정적인 표정이다.

오는 데만 40분이 넘게 걸리는 이 병원으로 오는 이유는 바로 저 표정 때문이다.
'수많은 환자들 중에 당신은 내게 특별한 환자다.'라고 말하는 듯한 저 표정
만약 그것이 특별히 의도하지 않은 타고난 표정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병원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진료실을 나섰다.

"다음 진료는 언제로 잡을까요?"

"어... 시간이... 4주 뒤 금요일이요."

"잠시만요... 의사 선생님이 4주는 너무 길어서 안 된대요. 그 앞주로 하시겠어요?"

"네, 그렇게 할게요."

상태를 봐야 하니 4주는 너무 길다는 그 말조차 '너는 특별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이 뭐라고.
그런 말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 나는, 나를 염려해 주는 존재가 필요한가 보다.
이제는 혼자서 서 있기가 버거운가 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덤덤한 나날의 주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