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 여행은 괜찮잖아

by 숨비소리

월요일이다.

딸아이는 오늘, 학교에 가지 못했다.

못 간 건지 안 간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다만, adhd약을 정량 이상으로 복용하지 않으면 움직이기조차 힘든 요즘의 나는,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학교를 보낼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담임선생님께 아이가 오늘 학교에 가지 못한다고 연락하는 것 정도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다.

그냥 '그럴 줄 알았다.' 정도일까.

기운이 있어야 화도 낼 수 있다.

나는, 완전히 지쳐있다.


아이에게 내가 없는 동안 할 일을 말해준 다음 아이를 혼자 두고 집을 나섰다.

오늘부터 매일 커피숍에 가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며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그 계획을 취소하고 싶진 않았다.


"가족이고 뭐고 나만 일단 먼저 생각하세요."


상담사가 신신당부를 했다.

이러다가 진짜 나가떨어진다고.

그래서 아이에 대한 걱정은 떨쳐버리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평일 오전인데도 커피숍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들 한가롭네.'


저 사람들도 나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겠지.

나는 그게 아닌데.

나는 살고 싶어서, 숨 쉬고 싶어서 여기 온 건데.

하지만 느긋하게 앉아 담소를 나누는, 여유롭고 편해 보이는 저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

나만 힘든 건 아닐 거다.

내가 조금 더 힘들 순 있어도.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마르케스의 '썩은 잎'이라는 책이다.

나이가 들었을 때 두고두고 읽고 싶은 100권의 책 중 하나다.

뭔가 내 취향이 아닌 듯하면서도 끌리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을 읽으며 궁금한 점이 생기거나 느낀 점이 있으면 책에 기록하기도 하고 챗gpt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시간이다.

집에선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없다.

누가 곁에 없더라도 집은 내게 안식을 제공하지 못한다.

내게 집은 마치 일터 같다.


갑자기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제주도 항공권을 예매했다.

숙소도 예약한다.

최저가도, 숙소의 퀄리티도 따져보지 않는다.

그저 갈 수만 있으면 된다.


남편에겐 아직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 여행을 다녀올 자격 정도는 있으니까.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해, 8월에 여행을 갈 예정이고 마지막날 하루, 딸아이 등교만 좀 챙겨달라고 했다.

엄마는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달갑지는 않았을 거다.

나는 엄마를 안다.

'뭐가 그리 힘들다고.'라는 생각을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있다는 걸.

이 모든 게 엄살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그건 아마 남편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상관없다.

누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죽을 것 같다.

약으로 움직이며 살아가는 내 마음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내게 여행을 갈 자격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내 스스로가 여행까지 남은 두 달이라는 시간을 버텨야 여행을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걸 알면서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탕으로


'내가 너무 엄살을 부리나? 더 참을 수 있는 거 아닐까? 내가 너무 나약하나?'


하며 자꾸 나를 몰아붙이는 건 나에 대한 직무유기다.


나는 흔들리는 나를 계속 붙잡는다.

남의 시선에 약해지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아니야. 너 힘들어. 진짜 힘들어. 약 없으면 움직이지도 못하잖아. 그러니까 갔다 와.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와.'


라고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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