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같이 퍼붓는 비를 뚫고 정신과에 갔다.
오늘이 진료를 보는 날이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약을 한 알 줄인 이후로 우울함이 치솟아 올라 결국 자해를 한 딸아이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의사를 만났다.
약을 줄인 이후 우울함이 심해졌다는 말을 했지만 의사는 그저
"줄인 건 보조치료제입니다. 아마 우울해지는 시기와 약을 줄인 시기가 겹쳤을 거예요."
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계속된 재입원 얘기.
재입원.
당신한테야 쉬운 일이겠지.
아이의 출석일수나 유급 문제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저 의사는 재입원이라는 해결책 밖에 알지 못하는 걸까.
하지만 아이가 다시 자해를 시도한 상황, 어제 아이가 꺼냈던 재입원 얘기, 사회적응연습을 하려면 입원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무턱대고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이는 여전히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의사가 방학기간에 입원하는 방법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질색을 하며 싫다고 했다.
방학 때는 친구들과 놀아야 한단다.
돌아오는 차 안, 나는 아이에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어제는 입원해서 빨리 낫고 싶다며. 그런데 방학 때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돼? 그건 그냥 학교 가기 싫으니까 입원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아이의 표정이 굳었다.
나는 아이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다.
어떤 때는 발표하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서, 어떤 날은 하기는 싫지만 발표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친구들 때문에 불안하다고 했다가 다음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시간 단위로 바뀌는 딸아이의 장단에, 나는 춤도 추지 못하고 멍청하게 서있기만 한다.
이 의사를 믿어도 될지에 대해 생각하며 상담센터로 향한다.
오늘은 상담까지 있는 날이다.
아이의 시무룩한 표정에 신경이 쓰인다.
마음이 아픈 아이를 너무 몰아세운 걸까.
좀 더 부드럽게 말할걸.
후회와 자책의 마음이 밀려온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게 맞나?
그냥 학교 가기 싫은 거 아냐?
이번에는 아이에 대한 의심.
머리가 터질 것 같다.
그때, 딸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목소리에 즐거움이 묻어있다.
복잡하고 심각한 건 나뿐인가 싶어 허탈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움츠러들어 있는 것보단 이쪽이 낫다.
상담센터에 도착했다.
아이는 상담하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와주니, 그저 감사해야 하겠지.
아이의 상담이 끝난 후 상담사가 나를 잠깐 부른다.
"엄마가 상담 안 다니면 정신병원에 처넣는대요."
아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고 한다.
"웃으며 말했다는 건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거거든요. 이 아이는 상담사니까 말해야 된다고 없는 아이예요. 그렇다는 건 지금 조금씩 굳어있던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거고, 제가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러고 있을 거예요."
좋은 징조란다.
나는 '말투 한 번 참... 사춘기스럽네.'라고만 생각했는데, 역시 전문가는 나와 관점이 다르구나.
상담사가 어떻게 재입원 얘기가 나왔는지 묻는다.
나는 고자질을 한다.
저 의사는 갈 때마다 재입원을 권유한다는 이야기, 아이가 약을 줄이고 우울해졌다고 했는데도 신경도 안 쓰고 그대로 약을 처방해 준 이야기부터 부모의 노력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에 기분이 나빴다는 이야기, 아이가 어떤 기분인지 도저히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 등등.
엄마한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대는 아이 같다.
상담사가 조심스레 병원을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말한다.
아이 앞에서 계속 재입원 이야기를 하는 것도 배려가 없는 거지만 재입원의 이유가 사회적응훈련이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저렇게 버젓이 자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는데 그걸 발견하지도 못하고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는 건 문제가 있는 태도인 것 같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병원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약이 잘 맞으니까"라는 이유로 억지로 참고 다녔는데, 누군가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에게 말한다.
"네가 저번처럼 자해를 반복적으로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한다면 당연히 입원을 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 사회적응훈련을 한다는 이유로 재입원을 시키지는 않을 생각이야. 알겠지? 그러니까 의사 선생님이 매번 재입원 이야기한다고 해서 신경 쓰지 마."
아이가 말한다.
"재입원 걱정에 밤에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곤 깔깔 거린다.
쇼츠인지 어디에서 유행하는 밈이란다.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저게 요즘의 문화겠지.
오래간만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