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아빠의 장례가 치러질 그곳을 본 순간, 참 이상하게도 내 안에 아빠의 죽음은 사라지고
나에 대한 연민이 차올라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아빠는 죽었고 산 사람은, 나는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하는 나는 아빠를 잘라내고, 치워 버려야 한다.
어렵다면...항상 그랬듯이 어렵다면, 내 마음속 그곳에 서둘러 아빠를 묻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살 수가 없겠다.
완전한 죽음을 보았다 해서 삶이란 것이 친절하게도 잠깐 멈추어 주는 건 아니기에, 서둘러 생에 대한 집착으로 방향을 바꾼다.
마음은 바빠지고 걸음은 빨라진다.
잘라낸 자리를 비워 두면 다시 자라날까 겁이나, 나에 대한 연민이던 동정이던 채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채우면서.
돌아가신 지 채 하루가 지나지도 않았다.
어떻게 죽음을 잘라내고 치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뭐가 그리 두려워 자꾸 빠른 걸음을 걸으며 마음을 다잡았을까.
자르지도, 치우지도 못해, 결국은 부서져 버린 마음에 묻어, 조금만 들쳐도 보일 얇은 덮개 하나 덮어 놓고는 모르는 척하며 살다.
결국은 들추어진 그곳이 곯고 문드러진 걸 보곤 덮을 덮개는 어디 갔나, 여기저기 찾아 헤메다 주저앉아 울 것을.
어리석다 비난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삶을 살아가겠다고 많이도 애쓸 네가 가여울 뿐.
고인에 아빠의 이름이 써져 있고 상주에 나의 이름이 써져 있는 이곳은산자가 위로받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되리라.
나를 보고 지나치던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이들과, 뒷짐을 지고 가던 할아버지, 끝까지 날 보면서도 눈을 마주치지 않던 당신들은 여기에 올 수 없으니.
블랙코미디
흰 상복을 입고 머리에 핀을 꽂고 상주의 자리에 앉는다. 뭔가 불편한 게 느껴진다.
잊고 있었던 나의 몸. 젖이 돌고 가슴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를 낳은 지 100일이 안된 몸은 아이를 위한 몸이다.
아이가 젖을 물을 시간이 되면 젖이 돌기 시작하고 차오른 그것을 아이 입에 물려야 하는.
슬픈 마음만 생각하느라 내 몸을 생각지 못했다.
흰색이 아닌 검은색을 선택했어야 하는 건데, 사이즈도 지금 입고 있는 사이즈가 아닌 두 치수 더 큰 걸 샀어도 괜찮을 뻔했다.
지금의 날 보면 엄마는 정말 웃을 수도 있겠다.
오래전에 아빠와 이혼한 엄마는 전화를 받고 놀라 달려와, 넋 나간 딸을 보며 울지도 못했다. 대신 손수건으로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느라 눈두덩이가 빨갛게 부어있는 엄마를, 난 집에 보내야 했다.
엄마가 있었다면 딸을 이런 꼴로 있게 하지는 않으셨을 텐데.
남편과 동생이 들어와 앉는다. 상복이 좀 작은 거 같지 않냐고 묻는다.
좀이 아니라 많이 작아 보이는데 누나.
모유가 차서 그래.
알고 싶지 않아 누나...
여보. 나 유축기 사야 돼.
우 축기?
유.축.기. 나 유도선수 같아. 짜증 나.
괜찮아. 예뻐
남편이 잘못했다. 예쁘다니. 동생은 웃기 시작했고 나와 남편도 따라 한참을 웃었다.
비극의 장소에서 블랙 코미디쯤 되는 희극의 장소가 된 것이다.
조문을 온 아빠 친구들은 영정사진을 보며 꼭 한 마디씩을 했다. 아빠는 20살 때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모르는 사람 없는 대머리였는데 영정사진에는 두툼한 머리카락이 올려져 계셨으니 놀랄 만도 하다.
한 분은 절을 하시다 말고 영정사진을 뚫어져라 보며 말하셨다.
쟤 머리가 왜 저래? 심은 거야?
저희가 사진을 급하게 구하는 바람에 결혼식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만들어 아버님이 가발을 쓰고 계신 겁니다. 친절이 과한 남편의 설명이다.
동생은 바람 빠진 소리를 픽픽 내며 웃음을 참는다. 나는 웃는 듯 우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다 참지 못해 나가 버리고 친절한 남편은 그저 웃고 있다.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앉아 밥을 먹는데 친구 하나가 옷이 작은 거냐고, 저고리가 왜 올라가 있냐고 슬픈 표정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모유가 차서 그렇지만 저 방에 유축기가 있어 다녀오면 가라앉으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나도 슬픈 표정 가득한 얼굴로 답한다. 그러다 묻는다.
이게 이렇게 슬프게 말할 건 아니지 않냐? 웃기는 얘기야. 사실.
지금 여기서 애 먹인다고 모유는 왜 짜고 앉아 있고 유축기까지 사 와서는.
정말 지랄이다 진짜.
웃으며 하는 말인데 들어가는 밥에 차오르는 눈물까지 막느라 목구멍이 터질 듯 아프다.
빈소에서 넋을 놓고 울다가도 젖이 차오르면 벌떡 일어나 방에 들어간다. 참고도 싶었으나 도저히 그것마저 몸에 품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많은 것을 쏟아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방금까지 그렇게 많은 눈물을 쏟아 내더니 이제는 몸에 있는 모유를 쏟아 낸다.
모유가 든 진공팩을 냉장고에 넣는다. 밤새 몇 번을 드나드니 아이에게 먹일 하얀 모유가 한 칸 가득이다.
보고 있자니 갑자기 뭔가가 차올라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그것이 화인지 슬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좋지 않은 무언가가 자꾸 차오른다.
차라리 이 장례가 끝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례가 끝나면 올라올 '이것'과 마주할 자신이 없다
다른 나
멀리 떨어져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너를 본다.
갑자기 생에 집착을 보이던 나를 보고서는 놀라 나간, 너다.
조문객들을 맞으며 울며 웃는 나를, 방에 들어가는 나를, 가벼운 얼굴로 나오는 나를 가만 보고 있다.
자리에 가 앉는다. 남편도 동생도 보이지 않는다. 조문할 사람도 오지 않을 늦은 시간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너가 찾아와 앉는다.
몸은 가볍고 구역질도 이제 나지 않는다.
너를 보니 마음이 편해진다.
너도 나를 보며 웃는다. 수고했다고. 많은 일을 열심히도 잘하고 있다고 위로한다.
꽃이 되고 싶다고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그런 나는 너가 되었구나.
아직 꽃이 되고 나무가 되고 싶으냐
너가 묻는다.
아니. 난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