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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Sep 17. 2020

.꽃과 나무가 되어.

.장례.



걸어 30분 거리에 있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가려 집을 나선다. 

날이 참 좋다. 6월 끝자락인 오늘 햇살은 밝고, 거리의 나무는 청록색을 띠며 강한 생의 기운을 뿜는다.

낙산공원을 내려가다 의자가 보여 앉는다. 슬퍼야 하는데 앉아 주변을 보니 마음이 평온해져 옅은 웃음마저 새나온다.


'이렇게 좋은 날들을 두고 가셨네. 날이 이렇게 좋은데' 간 곳을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나무를 볼 수도, 내가 느끼는 따뜻한 햇살을 쬘 수도 없을 것이다. 남은 나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꽃들과 나무와 하늘을 보고 있다. 아무 하지 않는 것들에게, 날 알리 없는 이들에게 위로를 받고 있다.


그저 내가 주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보라고. 너의 마음에 조금 위로가 될 것이니.
죽음을 본 너에게, 생이 활활한 우리가 맘껏 위로를 주고 따뜻함을 주겠다고.


이렇게 날 붙잡아, 어서 가야 하는 걸음을 멈추게 했다. 지금은 어제처럼 이날의 기억이 생생한데 한참을 잊고살았다. 오랫동안 햇살을 느낄 수도,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볼 수도 없었으니까.


자연은 그대로인데 난 많이도 변해 그들로부터의 위로를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게 되버렸다. 그들이 아무리 애를 쓰며 밝음과 아름다움을 뽐내도 그것들을 볼 수 없었다. 내 안의 우물에 갇혀.


먼저 가 있는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잠깐 앉아 쉬고 있다며 말했지만, 더 이상 늦어지면 걱정할 남편과 동생을 생각해 그만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다 잠깐 멈칫한다. 여기 보이는 꽃들과 나무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들 속에 섞여 조용히 있고 싶다고.


너희들과 섞여 오래도록 땅을 밟고 서있다 보면, 내 발도 뿌리가 되어 단단히 박히겠지.
꼭 지나가다 돌아볼 예쁜 꽃이 아니어도 좋으니, 너희들과 함께 바람과 비를 맞고, 햇살을 받으며 살면 안 되겠냐고. 
날 위로하던 이들이 이제는 빨리 걸음을 재촉하라 한다.
너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너가 속한 곳에 어서가 네 남아 있는 일들을 하라고.




될 리 없는 일들을 잠깐이나마 간절히 바라지만 꾸역꾸역 현실로 밀어 넣은 마음이 서둘러 길을 재촉한다.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죽음은 지나갔지만 남은 자들이 죽은 자를 위해 식을 치러야 하는 장소로. 

사실 그건 ,죽은 자를 위함이 아닌 우리 산 자를 위한 것이지만.

그래서 우린, 죽은 자들로부터 하나의 불편한 마음 남기지 않으려 바쁘게 움직이고, 서럽게 운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까. 그곳을 나오는 날, 내 눈물은 조금 덜어질까. 내 마음의 슬픔의 깊이는 조금  얕아질 수 있을까? 그럴 리 없겠지만 그럴 수 있다면 3일장이 아니라 10일장도 우리는 할 수 있을 텐데.

아빠의 죽음이 내 상상과 전혀 다르지 않음에 오는 상실이 있다는 것을 알까? 절망과 슬픔이 아닌 상실.

이런 일들을 줄곧 생각해왔다고. 언젠가는 아빠의 이런 죽음을 내가 겪으리라는 것을

아빠는 사는 동안 줄곧 비극의 주인공이었듯, 죽음도 그럴 것이라고.

떠오를 때마다 버려야 했던 죽음의 생각들이 선명히 현실에 드러나니, 되려 현실이 아닌 듯 흐릿하다



병원이 보이고 그 끝 어울리지 않게 붙여 놓은 것 같은 장례식장이 보인다.

벌써부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E41FJBN09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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