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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Sep 02. 2020

날파리 한 마리가 올라왔다.

.애도.


돌아가시려면 벌써 돌아가셨지. 죽으려면 벌써 죽었어. 위안 아닌 위안을. 스스로를 안심시키던 말들.


죽으려면 벌써 죽었을 아빠는. 없다. 


아빠는 혼자.

어릴 적 기억처럼 옆으로 누워, 팔을 베개 삼아 누운 채, 그동안 마셨던 녹색병들에 둘러 싸여 돌아가셨다.

한 병 한 병 마실 때마다 외로워 버리지도 못하고 빈병으로 자기를 두르며.

그 안에 누워 있는 아빠를 보았을 때, 둘러진 녹색병들이 날 맞이하는 것 같았다.


허벅지는 아직 사후 경직이 되지 않아 부드러웠다. 

크게 소리칠 수도 없어 조용히 아빠를 부르며 팔인지 어깨인지를 흔들자, 날파리 한 마리가 올라왔다.

작은 날파리 한 마리. 그 작은걸 보고 아빠가 죽은 걸 알았다.

날파리가 무서운 건지, 죽은 아빠가 무서운 건지 소리를 지르며 아빠 집을 뛰쳐나왔다 




죽은 아빠를 보고 뛰쳐나와 할 일은 울음뿐이다.

크게 소리를 내어 운다. 

우는 나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우는 나를 보며 왜 우냐며 아무도 묻지 않는다. 무슨 일 이냐고도 묻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이들은 힘껏 페달을 밟으며, 뒷짐을 지고 걸어가던 할아버지는 빠른 걸음을 하며, 크게 떠들며 걷던 아주머니들도 놀라 걸음을 재촉한다. 


이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저 여자는 자기 아버지가 죽은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왜 지금 저러고 앉아 울며 연기를 하느냐고. 확. 인. 하러 온 것뿐이면서.




고백을 하자.


그날 새벽, 내 온몸은 벌써 아빠가 돌아가신 걸 알고 불안으로 가득 차, 젖은 옷을 입은 것처럼 축축하고 무거웠다. 

꿈일 뿐이다. 밤잠을 자지 않는 아이 때문에 예민해져, 넌 괜히 너의 불안만을 크게 만들고 있다.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는 건, 어제 밤새도록 술을 드시고 늦게 주무셔, 다른 날처럼 아직 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꿈일 뿐이다.

하지만 유달리 선명한 이 불안을, 확인해야만 한다. 아직도 노란방에 가던 어린아이가 남아 있으니.


아빠의 집 앞이다. 문을 보는 순간 불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 차오른다. 확신이다.

초인종을 누르지 않았다. 현관 손잡이를 돌렸을 때 기다린 듯 들어 오라며 물이 열린다.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 갔는데도 이상하지 않다.

아빠가 죽은 걸 알면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연기를 해야 하는 딸처럼, 아빠를 흔들어 깨운다. 흔들어 깨우다 보니 돌아가셨다는 확신도 잊은 채 흔들어 깨우고 싶은 마음뿐이다. 

일어나라고, 늦어 미안하다고, 내가 왔다고. 
그런 나에게 그만하라고 확인이라도 시켜주는 듯 날파리가 올라왔을 때, 그제야 난 집을 나왔다.




아빠가 죽은 그때, 아빠는 날 찾아왔지. 

아빠를 보러 오라고. 죽어 있는 아빠를.

아빠는 나 밖에 없으니까. 

또 얼마나 미안해했을까. 그 하얀 얼굴로 연약한 자신을 미워하며.


내가 어른이 되어 이제는 아빠가 불러도 그 노란방에 자주 가지 못해

아빠의 외로움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그 많은 밤들을.

아빠는 녹색병들과 함께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병을 쌓았나 봐.


어젯밤. 죽기 전 내 이름을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 부르다 죽어 날 보러 내 꿈에 나왔나. 
근데 아빠. 그건 꿈이 아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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