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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Sep 07. 2020

꿈이라 부르고 싶지만 그건 꿈이 아니었다.

.애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

난 자고 있었지만 깨어 있었고 꿈이라 부르고 싶지만, 그건 꿈이 아니었다.




아이를 재우고 잠든 그 밤. 갑자기 한기가 들어 이불을 덮으려 당기는데, 누가 잡고 있는 것처럼 당겨지지가 않았다. 아래를 보니 검은 양복을 입은 아빠가 이불 위를 밟고서는 구부정히 몸을 낮춰 날 보고 있었다.

놀라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빠가 내 이름을 불렀다. 대답하는 대신 아빠를 내려봤다.

'아빠 간다. 아빠 이제 가'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아빠는 계속 날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빠는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날 보며. 아빠는 간다고.

꿈이라고 생각했다. 불안이 아빠를 꿈에 부른 거라고.

조금 있으면 아이가 깰 텐데.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에 대답 대신 이불을 당겼지만 거기 꼼짝없이 서서 날 부르는 아빠 때문에 당겨지지가 않았다.

'아빠 나 추워. 이불 줘' 그제야 아빠는 밟고 있던 이불에서 내려왔다. 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발을 보며 천천히, 한 발 한 발 이불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고 나간다. 아빠는 갔고 난 다시 잠이 들었다.




꿈이라 부르는 그곳에선 잠이 들었지만 현실의 나는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한다. 4시가 조금 넘어 있다.

이불을 꼭 잡고 있는 손에서 아빠가 밟고 있던 좀 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직 나는 꿈속에 있는 건가?

눈은 떠지고 정신은 맑은데, 아직은 그 꿈을 벗어나지 못한 끝자리 어디에 같다.

모든 것들의 경계가 흐려져 현실도 꿈도 아닌 어느 지점의 시간.

아빠가 열고 나간 방문을 본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아빠를 볼 수 있을까?  그곳은 현실일까. 꿈일까. 아니면 다른 곳일까.

묻고 싶다. 왜 이 밤에 나를 찾아왔는지. 그 검은 양복을 입고서는.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싶은 일을 묻고 싶다.


그러니까 아빠는 지금 산 사람이냐고. 죽어 나를 찾아온 거냐고. 아빠의 노란방을 드나들던 어린 딸이 이제는 자라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아 이렇게 기어이 찾으러 왔느냐고.
 아빠에 대한 연민인지 아니면 들끓는 화와 미움 때문인지 당장 일어나 저 문을 열어야 할 것 같았다.




아이가 깨어 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앉아 문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의 울음은 꿈과 현실의 어디쯤에 서 있던 날, 완벽히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일어나 앉아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린다. 

아이를 품은 내 손에, 이제 아빠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는다. 아빠가 나간 문을 바라본다. 항상 드나드는 문일 뿐이다. 어느새 참 기분 나쁜 꿈을 꿨다며 쉽게 단정을 지으려 한다.

아빠가 요즘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걱정되는 마음이 커 꾼 꿈이다. 이렇게 걱정할게 아니라 내일은 아이를 어머님께 맡겨놓고 잠깐이라도 아빠 집에 들러야 하겠다. 아빠가 좋아하는 커피를 일단 사다 드려야지. 날이 좋으면 같이 나가 산책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몇 주전 봤을 때, 머리가 많이 아프다고 한 게 마음에 걸리지만 어디 하루 이틀 아프신 것도 아니니.

그리 오래 그 많은 술을 드셨으니 여기저기 아픈 건 당연한 일이겠지.

'지금껏 큰 병 하나 안 걸리고 사신 것만 봐도 아빠는 술이 몸에 맞나 봐. 오래오래 사실 거야 아마.' 이런 말을 아빠와 한거 같은데. 그러면서도 지난번 아빠 친구가 의사로 있는 병원에 갔을 때, 들었던 말이 마음에 걸린다.

'너네 아빠 술 못 먹게 해야 돼. 혈압이 많이 높아서. 머리 쪽도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오늘은 안 한다고 하네. 잘 말해서 다음에 아빠 꼭 모시고 와라.'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커피와 지난번 맛있게 드시던 도넛을 사고, 아빠 친구에게 전화를 해 병원에 오늘 내원이 가능할지에 알아본 후, 안되면 함께 산책을 하거나 맛있는 점심을 먹어야지. 무얼 먹을까. 대학로 쪽에 새로 생긴 타이 레스토랑에 한 번 가볼까. 어머님이 약속이 있으시다 하면 어쩌지.

아직 내 삶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상적인 일들을 생각하려 한다. 커피점에 가는, 병원에 전화를 하는, 아빠 팔짱을 끼고 대학로에서 야외에 나와 공연하는 사람들을 보는, 나와 아빠를 상상하면서.


아무리 보통의 내일을 생각하려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어느새 내 몸은 검고 푸른 물가에 누워 있어 축축하고 춥다. 겨우 얼굴만 내놓은 채, 언제 온몸이 빠질 줄 몰라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차리려 하지만, 두려움과 불안에 눌려진 나는 꼼짝할 수 없다. 

겨우 고개를 돌려 아이와 남편을 바라본다. 아이를 만져, 깨워, 젖을 먹이고 싶지만 천장을 바라본다. 가까이 있지만 지금 그들과 난 멀리 있다.

온몸에 한기가 들어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물에서 건져진 사람이 큰 숨을 뱉어내듯 크게 호흡을 하며 숨을 내쉰다.

물이 사라진 자리에 앉아, 축축히 젖은 옷을 만진다. 일어나 옷을 갈아 입고 다시 남편과 아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나는 자리에 눕는다.

날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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