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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Oct 15. 2020

.우울.

.우물.

시작


안 좋은 기억은 덮개로 잘 가려놔 드러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어 나조차도 속아 엄마에게 말하곤 했다.

엄마. 난 나쁜 일은 잘 기억이 안 나. 참 다행이지.


마음속에 덮개 하나를 품고 살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우물이. 깊은 우물이 들어섰다.

들어 올려져 마실 말간 물은 없고, 온갖 쓰레기들이 쌓여, 썩고 썩은 물이 차지한.


밝고 명랑한 아이라고 어른들은 말했다. 사실 아주 예민하고 어두운 것들을 잘 볼 수 있는, 그래서 그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꼭꼭 숨겨두기까지 할 수 있는, 영악한 아이라는 것도 모르고.

보이는 것들은 어둡고 밝지 않더라도 아이는 이런 것들을 못 본 척 , 모르는 척 명랑하게 살아야 하겠구나 결심 아닌 체념을 했다.

하지만 본 걸,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눈으로 보아 마음속에 박힌 걸 밖으로 꺼낼 능력은 영악한 아이라도 없어, 아이는 그것들을 저기 한 구석에 모으기로 했다. 땅을 파고, 가져간 것들을 묻고 덮개로 야무지게 덮기까지 하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아무도 볼 수 없을 거야.



덮개는 없어.

이제 여기 우물을 잘 들여다봐야 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고 있어. 시간을 견디다 보면 없어지는 줄 알았더니. 차곡차곡 잘도 쌓였구나.

보지 않을 거야. 다시 여기 오지도 않을 거야.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모르는 척 살아가면서.

할 수 있어. 어릴 적 체념했던 것처럼 밝고 명랑한 어른처럼 살아가면 돼.

이번엔 체념이 아닌 결심을 해야 하지만.

그런데 여긴 왜 이렇게 캄캄한거야?


우울


결심을 한다. 노력을 한다. 밝게 웃으려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맛있는 걸 먹는다.

아무리 체념을 하고 결심을 해도 더 이상 어린 날의 내가 아니었다. 연약하고 예민하기만 한 어른이 되어 어릴 적처럼 아픈 걸 묻을 힘도, 그렇다고 견딜 자신도 생기지 않았다.

드러나 버린 그곳을 본 후, 깊은 우물처럼 우울이 생겨났다.

힘없이 우울에 이끌려 우물 아래를 뚝. 뚝. 뚝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나를 본다.

모든 것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밝음도 시간도.

일상을 살다 우물로 내려가는 일이 잦아졌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아이와 산책을 하다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아 더 웃고 맛있게 먹고 빠르게 걷는다.


밤이 오면. 내 앞의 사람도 남편도 아이도 없는, 우울을 들킬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밤이 오면, 몸을 내어준다.

우울이 찾아와 가자고 하는 말에 따라나선다. 어느 때보다 또렷한 정신으로 우울을 마주한다.

끝이 없을 거 같아도 바닥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크지는 않지만, 분명, 우울이 우물의 바닥에 내려가 닿는 소리가 들린다. 안심이 된다. 

내어주긴 했어도 어디까지 내려갈까, 과연 끝이 있을까, 사실 마음을 졸이고 있던 중이었나 보다.

잠시 그곳에 머무른다. 온갖 묻힌 것들에 둘러싸여 괴로울 것 같지만, 우울이 바닥에 닿으면 이상하리만치 평온하다. 

혼자, 검고 푸른 밤에 깨어, 손가락 끝에도 남아있는 힘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어느 때보다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올라 오려는 너를 밀어내느라, 오늘 낮에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밤이 되면 내가 이렇게 널 따라나서지 않니.

여기 우물에서 가벼움과 평안함을 느끼는 날 보아라.

아이와 남편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에는 좀 기다려 줄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럴때 네가 오면 난 어찌할 바를 몰라.


묻지만 답은 없다.


올라갈 시간이 되었다고 누가 날 깨우는 것 같다. 네가 느끼는 평온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누군가 말한다. 너에게 검고 푸른 밤만 있는 건 아니다. 곧 날이 밝아, 발끝에서부터 빛이 비치어 너의 온몸을 따뜻하게 만들 새 날이 올 것이니 이제 그만 어둠에서 나와야 한다고.

당신의 말을 믿지는 않지만 올라가긴 할 거라며,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난다. 순순히 내려오긴 했어도 결코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손가락 끝에서부터 다시 힘을 내어 올라가기를 시도한다. 모든 일에 연습이 필요하듯 올라가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내려갈 때는 우울이 나를 끌고 가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어, 혼자 힘으로 올라가야 한다.

날 데려간 우울은 내 안에 깊게 들어와 버려 가벼웠던 몸은 다시 물 먹은 듯 축축이 무거워지고, 우물 안에 있는 묻혀진 것들이 올라가려는 나를 눈치채고는, 잡아 놔주려 하질 않는다.


조금만 올라갔는데도 힘이 들어 다시 바닥에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날들과, 다 올라왔다 싶었는데 아직 컴컴한 우물 속인 걸 알고 놀라 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많은 것을 참아내는 날들이 있고 작은 것 하나도 참을 수 없는 날들이 있다. 


따뜻하게 해 줄 거라는 빛에 몸이 데인 듯 아려, 어둠을 찾아서는 몸을 담근다.

 



눈 앞에서 아이가 논다. 바닥에 가슴을 대고, 얼굴도 바짝 붙이고는 작은 자동차를 굴리고 있다. 자동차보다 바퀴를 더 좋아해 아래 달려 있는 작은 움직임을 보기 위해 애를 쓴다. 바퀴야 바퀴야 부르며 노는 아이를 보니 웃음이 난다. 아이의 노랫소리와 노는 소리와 날 부르는 소리는, 어떤 것보다 날 빨리 우물에서 올라오게 만든다. 아이와 있을 때는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그저 따뜻하기만 하다.


저 어린것이 엄마의 우울과 불안을 알 리 없다.


저 어린것은 누구보다 엄마의 우울과 불안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저렇게 예쁘게 밝게 웃는 아이가 그걸 알 리 없다.


아이는 엄마의 우울과 불안을 알아차리곤 저렇게 예쁘게 밝게 웃어 준다.


두 마음을 가지고, 어느 쪽도 편치 않을 마음을 가지고 아이를 바라보다 우울이 또 찾아올까 싶어 얼른 장난감 차를 가져와 아이 옆에 눕는다. 같이 얼굴을 바닥에 대고, 바퀴를 굴린다.

내가 가져온 자동차의 바퀴는 아이의 것보다 많이 돌아가지 않아 이내 서버린다. 엄마 자동차는 왜 네 것보다 빠르지도 않고 멀리까지 가지도 못하냐고 묻자, 아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차의 바퀴가 세상에서 제일 빨라서라고  말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바퀴를 가지고 있는 아이는 신이 나고,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크게 숨을 몰아쉰다. 엄마의 큰 숨소리에 아이는 잠깐 놀라지만 금세 엄마처럼 큰 숨을 따라 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위로 올려 큰 숨을 따라 하며 크게 웃는다.


기를 쓰면 괜찮겠구나. 있는 힘을 다한다는 의미의 기를 쓰면, 아이와 남편과 지금처럼 잘 살아갈 수 있겠다.

다녀와 큰 숨 한 번 몰아쉬면 된다.

덮개가 없어져도 살 수 있다. 우물을 보아도 올라오는 법을 알았다.

기를 쓰면 되는 일이다.


교만


우울이 일상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게.

우울에 대한 슈퍼파워라도 생긴 것처럼, 언제든지 내 안의 우울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거라고, 교만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조심스럽지 않게 바닥에 내려갔고, 시간을 단축시킨 운동선수처럼, 전보다 우물에서 올라오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며 대견한 듯 웃고 있다.


슈퍼파워가 생겨 내 안에 있는 우물을 조금이라도 얕게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내 안의 그곳이 더 깊어지고 어둠이 짙어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린 나는 부지런히 묻었고

어른이 된 나는 부지런히 묻어둔 우물을 보며

또 그만큼의 우물을 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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