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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지 Dec 24. 2022

선율의 아름다움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느끼는 <황홀감>

사춘기 시절 감수성이 풍부할 때 좋아했던 것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부인이나 남편이 있어도 첫사랑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고들 하며,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갈 때까지 그 시절의 낭만을 잊지 못한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어린 시절 다른 아이들이 모두 피아노 학원을 다니지만 나는 다니지 못했다. 다른 애들은 영어학원이며 수학학원이며 부지런하게 다녔지만 나는 어떤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


피아니스트의 꿈을 꾸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또래 친구들보다 뒤늦게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된 날에 학교에서 수업중인데도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계속 시계만 보았다,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피아노학원으로 책가방을 매고 달려갔다. 그때부터 나는 피아노 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처음에는 '도'를 못 쳐서 '파'를 치고는 했다. 틀리는 것도 재밌었다. 틀리면 틀린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처럼 틀리면 그에 맞는 음이 하나씩 나오기 때문에 재미있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른다는 것, 누르면 소리가 난다는 것에 속으로 환호했다. 건반을 하나씩 누를수록 오만가지의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는 것이 좋았다. 다양한 멜로디, 전율로 하나의 <예술>을 완성하는 듯한 행위는 너무 내 맘에 쏙 들었다. 


물론 피아노 학원을 입시와 동시에 끊으면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게 되었지만 다른 꿈을 꾸게 되어서 나름대로 영광이다. 하지만 피아노는 내가 아직도 사랑하고 좋은 추억이 남아있는 악기이다. 가끔은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은 게 후회되기 일쑤이다. 중학생 때부터는 내가 일상생활에서 생각이나 자극을 얻으면 글을 써서 나만의 방식으로 감정이나 영감을 표현하지만 초등학생 때는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피아노 악기를 연주하거나 내가 작곡한 음악이나 음표를 써 내려가고 두드리면서 나만의 창작세계를 만들어나갔던 것 같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아가는데 한 가지씩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를 표현할 예술적인 도구가 필요하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예술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씩 자신만의 표현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아노는 초등학생 때 그래서 소중한 예술을 알려주는 그런 도구였고, 중학생 때부터는 노트북과 글을 쓸 수 있는 작은 펜이 나의 표현의 창구가 되어줬던 것 같다. 아직도 유튜브나 거리나, 어느 곳에서 클래식이나 피아노 건반의 소리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면서 그 연주에 집중하고 싶어 진다. 피아노 반주와 선율에 내 몸을 맡기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뭔가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것과, 영감을 가져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의 세상에서 받은 영감을 2차적으로 다시 좋은 방향으로 세상에 에너지를 내뿜는 방식이 좋다. 좋은 향기나 좋은 추억이 그 장소를 기억하게 만들듯, 좋은 선율과 소리는 그때 받게 된 영감의 감정을 생생하게 다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면 꼭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소리를 통해 내뿜고 연주하고 싶어 진다. 그런 <아름다움>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어준다. 내게 처음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해준 피아노,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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