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해 이러다가 다 죽어
오전 11시.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대화가 시작된다.
"오늘 점심 뭐 먹으러 가요? “
"명동에 설렁탕집 개업했데요. 거기 가보려고요."
"주무관님은 뭐 드실 거예요?"
"양곱창 뚝배기가 있는데요. 원래 13,000원인데 11월까지 3,000원 할인해서 10,000원이래요."
"와~ 그럼 저도 그거 먹을래요."
이제 그만해 이러다가 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땡' 하자마자 우리는 새로 오픈한 가게로 향한다. 새로 생긴 가게라 그런지 내부 인테리어가 깔끔하다. 냅킨을 보니 ○죽, ○도시락 등 계열사 이름이 쭉 적혀있다. 아 이 집은 죽으로 유명한 회사의 프랜차이즈 식당이구나.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기는 왜 물을 안 주지?’ 기다리는데 기둥에 당당히 붙어있는 “물은 셀프입니다.” 음.. 물 뜨러 가자.
6천 원짜리 칼국수 집에 가도 물은 갖다 주는데. 만 원짜리 음식을 팔면서 물이 셀프? 덕분에 밥을 먹는 중간에 물을 찾아 두 번이나 일어났다. 작은 물통이라도 하나 갖다 주면 좋으련만. 음식값에 비해 서비스가 저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그러려니 하자.
점심을 먹는데 누추한 복장을 한 할아버지 한 분이 식당으로 들어온다.
식당에 손님이 들어오면 밝은 표정은 아니더라도 우리 가게를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어서 오세요'라며 반겨주는 것이 기본일 텐데 주문받는 젊은 사장의 말투를 보니 '왜 저런 꼬질꼬질한 할아버지가 우리 가게에 왔어'라는 말투다.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젊은 사장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여기 와서 계산하세요!!"
놀라서 입안의 밥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살펴보니 식사를 다 하신 할아버지가 앉은자리에서 계산하라고 만원을 꺼내서 내밀고 계신다.
‘아~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건 시장 스타일이에요.’ 근처 시장식당에는 할아버지들이 앉은자리에서 카드나 현금을 내밀면 주인들이 와서 계산을 해주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물도 셀프인 식당에서. 그것도 방금 개업한 식당에서. 사장 입장에서 보면 아주 큰 사고를 치신 것이다.
이어지는 할아버지와 젊은 사장의 기싸움. 둘 다 한 치의 양보가 없다. 마치 두 명의 사무라이가 빈틈을 노리며 칼을 뽑기 전과 같은 전운이 감돈다. 이를 보다 못한 주방 아주머니가 할아버지의 꾸깃꾸깃한 만 원짜리 지폐를 받아 사장에게 갖다 준다. 계속되는 사장의 버럭 쇼.
"아주머니. 이러시면 안 돼요."
와~ 밥 먹는데 왠 날벼락. 일단 빨리 나가자.
중간에 나와서 할아버지가 직접 계산하셨는지 주방 아주머니가 잔돈 천 원을 거슬러 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이기지 않았을까?
“사장 아들인가 봐요.”, “그렇지? 사장이면 저렇게 안 하겠지?”, “혹시 회사 평가단 그런 거 아닐까요?”, “정용진 부회장처럼 암행감찰 나온 거면 X 됐네요.” 나오면서 동료들 사이에 이런저런 농담이 오간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젊은 사장이 고생을 덜 했구먼’
모든 사업장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경영원칙이 있다. 사장이 정한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하지만 손님에게 큰소리를 내고 식당 내 손님들의 기분까지 잡치게 하는 원칙은 옳지 않다.
사업을 하다 보면 예의 바르고 깔끔한 손님만 만나면 좋겠지만, 사업에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장사 특히 음식 장사를 하는 사장이라면 더 넉넉한 인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익을 남기고 가게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춥고 배고프고 가난한 손님에게도 정성껏 마련한 나의 음식을 대접해 드린다는 마음. 손님의 뱃속은 물론 마음까지도 든든하게 채워준다는 풍족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
이 식당은 위치도 좋고 프랜차이즈 이미지도 있어 그럭저럭 유지는 될 것이다.
하지만 젊은 사장이 손님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내 가게를 찾아주신 손님 중심이 아닌 가게나 사장 편의 위주의 원칙을 계속 고집할 때 과연 이 가게가 번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단
나는 그런 가게 가고 싶지 않으니까.
'젊은 사장 양반
친절하게 좀 해
이러다가 다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