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블록스 게임 칼인데요. 걔가 내 생일 선물로 사준다고 약속했어요. 엄마한테 현질 해도 된다고 허락도 받았대요." 평소에 게임을 좋아하는 아들이 친구가 현질을 해서 게임 아이템을 선물해 준다니 자랑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가끔 아이들이 "아빠 우리 현질하면 안 돼요?"라며 물어보곤 하는데,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게임에 소중한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안 돼!!”라고 말해 주곤 한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어이가 없다.
요루검이라는 게 로블록스라는 게임의 아이템인데 돈으로만 살 수 있어 게임 내 명품, 인싸템으로 불린단다. 그것을 함께 게임을 하는 학원 친구가 사주겠다고 한 모양이다.
"무슨 초등학교 3학년 얘들이 생일 선물로 현질을. 친구한테 그런 거 사달라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아녜요. 친구가 사준다고 그랬어요."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솔직히 그건 돈을 달라는 거랑 똑같아 보여. 내가 보기엔 친구가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고. 그러니까 친구한테 고맙다고 말하고 네가 맛있는 같이 먹자고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아들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진다.
내가 이렇게 말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도 지금 우리 아들 나이 때 친한 친구가 "내가 너 생일 선물로 5천 원 줄게."라고 했던 일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5천 원이라는 돈은 오락실에서 게임 100번을 할 수 있는 큰돈이었고, 물론 친구는 5천 원이라는 거금을 줄 능력도 없다. 하지만 철없는 나는 그 지킬 수 없는 약속에 그 5천 원은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할 돈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나는 "야 선물해 준다더니 왜 안 줘 . 빨리 5천 원 갚아."라는 말을 해 친구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지금도 문득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아이 씨' 하며 부끄러워 몸을 떨며 이불 킥을 날리고 있다.
나의 싸가지 DNA를 물려받은 아들이기에 나와 같은 언행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크게 실망할 수 있어 친구에게 ‘괜찮다고 고맙다고’ 말하라고 한 것이다.
그 말은 들은 아들이 저녁을 먹다 말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뭐 하는지 봤더니 선물을 사준다던 친구와 카톡을 하고 있다. 카톡을 마친 아들이 식탁에 앉더니 나에게 경과를 이야기해 준다.
"아빠 친구에게 선물 안 해줘도 괜찮다고 했어요. 그래도 계속 사준다고 했는데 내가 나중에 떡볶이 사준다고 그랬어요."
“우리 아들 정말 멋지네.”
그런데 아이의 고개가 축 숙여진다. 등이 들썩거리며 식탁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흑흑. 흑흑."
"아들 울어? 게임 선물 너무 받고 싶어서 그런 거야?"
"아니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요."
몰라요. 자꾸 눈물이 나요.
아~ 그까짓 게임 아이템이 뭐라고. 너무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차마 갖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생일 선물로. 사 줘야 하나?'라는 생각에 아내를 바라본다.
"여보 사줄까?"
"안 돼. 무슨 게임 아이템을 돈 주고 사."
"음... 준서야 아빠가 사줄게."
그 말을 들은 아들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돈다.
"정말요? 와~!!"
"게임 아이템 얼만데."
"800 로벅스니까 만원 정도요. “
'우 씨 칼 하나가 뭐 이리 비싸'
"알았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알았지?"
"와~ 아빠 최고!!"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말한다.
"여보 생일 선물이니까 12월 생일 때 사줘. 준서 생일 선물 벌써 당겨서 사 줬는데 미리 사주면 또 사달라고 그럴 거 같은데. “
"아니야. 이왕 사는 거 빨리 사는 게 좋아. 자기도 결혼기념일 전에 구○ 샀잖아.
잦은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라며. 늦은 현질은 레벨업만 늦출 뿐이야.”
(우리 집에서도 건재한 한국 대표 고유명사 ‘Naeronambul’)
그래서
이번 주말에 나는 아들과 함께 기프트카드 사러 간다!
당장 갖는 기쁨도 좋지만, 기다리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역사적인 현질일을 토요일로 잡았다. 덕분에 나는 오매불망 주말만 기다리는 아들에게 3일간 최고의 아빠가 되어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