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중학교 때부터 단짝 친구 1명, 20년 지기 직장 동기 2명을 제외하고는 친구들과 거의 사적인 만나는 자리를 갖지 않는다. 지금도 좋은데 굳이 이 친구들 이외의 친구들을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친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데서 기인한 피로감이 싫다. 거기다가 어렸을 때부터 풍족하지 못하게 살아서 그런지 만남에 수반되는 지출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시골사람들이 장날을 기다려 장을 보러 가는 것은 꼭 살 물건이 있어서거나 살 돈을 장만해서가 아니다. 그야말로 장(市)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돈을 쥘 필요는 없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옛날 시골사람들은 마땅히 살 물건이 없거나 물건을 살 돈을 장만하지 않았더라도 장날이 되면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장을 보러 갔다고 한다. 굳이 크게 사고 싶은 것도, 돈도 없지만, 그냥 시장에 가서 사람 구경, 물건 구경, 새로운 소식들을 접하는 것이 그저 즐겁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뭐 돈 없으면 어때!’ 정신이다.
이 대목을 보면서 나의 좁고 소박한 친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이 글을 보니 내가 좋아했던 고등학교 동창 1명, 대학교 동창 1명이 생각난다. 학교 다닐 때 항상 붙어 다니면서 웃고 떠들고 많은 시간을 함께했는데 둘 다 연락하지 않는지 5~6년도 지난 것 같다. 가끔 잘 지내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연락한 지가 꽤 되어 내가 먼저 연락하기도 어색하다.
40대가 훌쩍 넘은 지금 내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아마 지금의 나는 살만해서 내 만남에 대한 여유 면적이 조금은 넓어졌나 보다. 그래도 내가 먼저 연락하기엔 좀 창피하고 그런데…. 친구야 전화 좀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