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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행복수집러 May 24. 2020

여행. 잔 말 말고 따라와

호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가출했던 와이프가 돌아왔다.

어제 친구들과의 1박 2일 글램핑 여행이 꽤나 즐거웠던 모양이다.

들어오자마자 잘 다녀왔다며 아이들과 나에게 쪽쪽쪽 뽀뽀 세례를 한다.


그러더니 내 팔을 살살 쓰다듬는다.

"왜 그래?" 왠지 모를 두려움에 움찔한다.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그러더니 내 어깨를 주무르며 이렇게 말한다.


"여보 우리 금요일에 소윤이네랑 인제 캠핑장 가기로 했어. 2박 3일"


"끙~"

전에도 말했지만 난 좀처럼 나다니기를 싫어하는 체질이라 정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한번 찔러본다.


"나 이번 주에 일도 바쁘고 주말에는 좀 쉬고 싶은데. 그리고 캠핑 가면 괜히 소윤이네한테 피해만 주는 것 같아서 맘이 불편해."


역시 통할 리가 없다.

"아유 괜찮아. 불편하면 소윤이네가 우리 부르겠어? 이번 주 준영이 생일도 있고 가자~앙."


<학부모 모임 CLP가 만들어 준 캠핑표찰, 0연 씨와 0남 씨는 참 마음이 따뜻하고 재주도 많다>


'소윤이네가 우리를 부른다.'와 '내가 캠핑 갔을 때 마음이 불편하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 집에는 텐트, 타프, 화덕 등 굵직굵직한 캠핑 장비가 없다. 캠핑을 갈 때마다 큰아들을 매개로 한 학부모 사조직 CLP 멤버인 '소윤-태우'네  집에서 우리가 잘 수 있는 텐트, 타프를 다 쳐주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는 몸만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우리도 음식, 설거지 등을 하기는 하지만 내 생각에는 기여도가 굉장히 많이 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차라리 리조트에 가면 이렇게 미안하지는 않을 텐데. 뭐 나의 자격지심인 것이다.


가만히 보면 우리 와이프는 참 넉살이 좋다.

이런 것을 불편한 생각 없이 당연히 받아들인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호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것을 받았을 때 '더 좋은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야 좀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하루다.


<작년 캠핑 갔을 때의 모습, 얼굴 노출 안된다길래 19금으로 발라 줬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난 몇 번의 캠핑 모두 다 즐거웠다. 우리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고, 함께 있는 것이 즐거웠기에 다시 불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괜히 가기도 전에 미안해하지 말자.


우리 와이프의 말이 압권이다.

"잔 말 말고 따라와~ 그래야 나중에 늙어서도 계속 데리고 다니지!"


그래 우리 황 장군님의 말이 맞다. 그래서 나는 끝내 이렇게 정답을 말하고 만다.

"이얏호!! 신난다 우리 캠핑 간다~ ㅋㅋㅋ"

(빠른 태세 전환 ^^)


여행! 잔 말 말고 따라가자.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멋진 인생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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