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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행복수집러 May 26. 2021

너와 나의 필사의 밤

"사각사각"


내 펜촉 에서 얇고 검은 글자가 새롭게 태어난다.

고운 종이 위에 새겨지는

한 땀 한 땀이 새삼스레 감동스럽다.



내 친구 경희가 다시 필사를 시작한 지 벌써 보름째다.



책 읽기와 시 쓰기를 좋아하던 경희는

6년 전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나를 놓았다.



남들은 누구나 하는 일이라고 폄하하지만,

6살 은경과 3살 희경을 돌보며 홀로 하는 갖은 집안일은

경희에게는 이를 악물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시인이라는 꿈을 되살리는 것은

육아와 가사라는  절대 끝나지 않는 전쟁을 하는 

경희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재운 다음에 하면 되지 않냐고?

둘째 희경이 젖을 뗀 두 돌 전까지는

4시간 만이라도 통잠을 자는 것이 소원인 경희였다.

아이가 잘 때 함께 자야만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 시를 쓴다는 것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 경희가

드디어 나를 잡고 새하얀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 내려간다.


자기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써 내려간다.




"그러니 오늘 밤에도 써야겠다

깊고 어둔 구름에 맺힌 여름에 대해서,

젖먹이를 품에 안고 멍하게 노을을 바라보는

어린 엄마들의 어깨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글을 썼다 지웠다를

무수히 반복하고 있는

그들의 멈춘 시간에 대해서..."

<김이설 -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경희야

가족도 아이도 모두 소중하지만

네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란 걸

잊지 았으면 좋겠어.



지금 너와 함께 하는

이 필사의 밤이 나에게는

너무 기쁘고 벅찬 순간이란다.



오늘

우리가 함께하는 고요한

'필사의 밤'이


언젠가

찬란하게 빛나는

'시인의 밤'이

되리라 난 믿어



경희야

너의 꿈을 항상 응원할게!



<너를 사랑하는 '만년필' 라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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