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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행복수집러 Sep 12. 2021

아버지와 벌초를 다녀오면서

고마워요, 아빠

다들 벌초 다녀오셨나요?


추석명절이 얼마 남지 않아 아버지, 동생과 함께 벌초를 다녀왔습니다.


아침에 동생과 함께 아버지 댁에 갔더니 집 현관 앞에 예초기, 낫, 낙엽 긁개 등 작업도구가 "어서 와~ 오늘 수고 좀 해"하며 우리를 반겨줍니다.(전 별로 반갑지 않았습니다.)


오래간만에 뵙는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따뜻한 아침밥을 단단히 차려 먹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계신 집안 묘소로 찾아갑니다. 요즘 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요? 열대우림 숲이 따로 없습니다. 묘지 주변에 풀이 어마 무시합니다.


"와 저걸 언제 다하냐"


묘소에 도착한 후 저는 예초기를 등에 매고 묘지 주변에 있는 풀을 베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와 동생도 낫과 갈고리를 들고 묘소 주변을 정리합니다.


'부응 부응' 예초기 소리가 경쾌합니다.

온몸에 짜릿한 진동이 전해집니다. 예초기 돌려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한참을 돌리면 손도 덜덜 떨리고 감각도 좀 없어집니다. 잠시 예초기를 멈추고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아버지께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허리춤까지 오는 풀들을 잘라내고 계십니다.

벌초를 오면 벌초를 가장 열심히 하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입니다. 아마 할아버지 생전에 더 잘해드릴 걸 하는 마음이 크신 것 같아요.


사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이는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께서는 인물도 좋고 덩치도 좋으신 분이셨는데 아버지가 어렸을 적 도박에 빠져 많던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시장에서 마늘을 파시며 힘들게 힘들게 아버지 5남매를 오롯이 키우셨죠.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결혼을 하실 때 집을 떠나신 할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시고와 노환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벌초를 하시는 아버지를 보면 너무 싫고 밉기는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에 이어진 끈질긴 인연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벌초를 하면서

"아버지와 벌초를 할 이 몇 이나 남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 나이가 벌써 40대 중반이니 아버지의 나이는 벌써 80을 바라보고 계시니 아무래도 아버지와 함께 벌초를 할 날이 그리 많지 않음에 마음이 좋지만은 않네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관계만큼은 아니지만 저와 아버지와도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닙니다. 내 나이의 사람들이 다 그랬듯이 풍족하지 못한 상황에 당장 먹고살기 바빠서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저도 자식을 낳고 어엿한 가장이 되었지만 아버지 보다는 가족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아버지께 다정하지 못한 나쁜 아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할 날이 함께 한 날보도 많지 않음을 알기에 .. 좀 더 다정한 아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버지 저 비록 못난 아들이지만

앞으로 잘할게요.

고마워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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