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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Mar 26. 2017

<셰익스피어 인 러브>, 존 매든 감독

* 2015년 12월 27일에 쓴 글입니다.


 세상에 오직 사랑만이 영원할 지어니.


 기어코 부정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기어이 사랑이라 부를 밖에는 도리가 없었어. 소설가 김훈은 -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 고 했었는데, 그의 정의 내림에 의하면 그 마음은, 그것은 결단코 사랑이고 만 거였지.


  날마다 갈등에 시달렸다. 세찬 파도의 철썩임처럼 번민이 와 닿았고 우기의 장맛비처럼 번뇌가 쏟아져 내렸어. 사랑을, 비우면 심장이 말랐고, 담자니 그리움이 차올랐으니. 시나브로, 시들어가는 젊음처럼 사랑에의 갈망도, 욕망도, 용기도 사라져갔어. 가난한 성탄절의 저녁에 우연히 <Shakespeare in Love,1998>를 보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영혼은 아케론(Acher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의 강. 슬픔과 비탄의 강이라고도 한다.)의 물길 위를 떠돌고 있었겠지.


  간단히 말하자면, <Shakespeare in Love>는 상상 속의 이야기야. 아주 낭만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세상에 다시없을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승화했다는 그런 이야기. 그래 어쩌면,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그랬을지 모르잖아.


               “난 사랑을 갖고 말거야. 아님 삶을 끝내고 말지.”     


  기네스 펠트로가 연기한 극 중의 바이올라는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는 이렇게 말해. 한겨울의 바닷물빛 같은 눈빛을 하고 말이지. 그 모습을 보며 심장이 떨렸어. 세상에 어느 누가, 사랑에의 설렘을 막을 수 있으랴. 사랑에의 갈망을, 욕망을, 무모한 용기를 막을 수 있는 힘이란 없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윌리엄 셰익스피어 말이야. 그도 꼭 그런 모습이었을까. 극 중에서 셰익스피어를 연기한 청년 시절의 조셉 파인즈는 꼭 햄릿 같았어. 자유분방하고, 맹목적이면서도 순결한. 만약 그랬다면, 나 역시 그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을 거야. 내내 그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환하게 빛이 났다니까. 태양이 그를 따라다니는 듯 했어.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 수 있으리까.

그대가 훨씬 사랑스럽고 온화하오.

거센 바람이 오월의 향긋한 꽃봉오리를 흔들고

우리에게 허락된 여름은 너무도 짧으오.

때로 하늘의 눈이 작열하고

그의 황금빛 안색이 흐려지는 것도 자주 있는 일.

우연, 혹은 자연의 무상한 이치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때로 시들지만

그대의 영원한 여름만은 시들지 않을 테요.

그대가 지닌 아름다움도 잃지 않으리.

죽음조차 그대가 제 그림자 속에 헤매인다고 자랑치 못할 것이오.

불멸의 시구 속에서 그대는 시간과 하나가 되도다.

인간이 숨을 쉬고 눈이 있어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아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니. 

 -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18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셰익스피어가 바이올라에게 전한 수많은 연시(戀詩)에는 어쩌면 이런 시가 쓰여 있지 않았을까.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테니까. 물론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겠지.     


       “지금까지는 시인이었지만, 내가 본 그녀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나의 시들은 탑 위의 까마귀들이 짖는 소리밖엔 되지 않아요.” 라고.     


  영화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패러디하는 장면들을 찾는 것이 쏠쏠한 재미가 될 거야. 극의  공간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답답하기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와 서사에 몰입하기에 오히려 좋아. 몽타주 기법을 자주 사용해서 관객들이 인물들의 감성을 고스란히 좇을 수 있어. 쿵쾅쿵쾅.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심장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     


 워섹스 경 역을 맡은 콜린 퍼스의 연기를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울 거야. 압권은 기네스 팰트로와 조셉 파인즈의 조합이지. 로미오와 줄리엣의 화신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달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말이야.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내 마음 속에 사랑이 피어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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