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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Apr 18. 2017

<나의 사랑, 그리스(Worlds Apart)>

불행에 책임질 사람.

불행에 책임질 사람.


 이야기 하나. 한 여인이 그리스 레스보스 섬 해안에 앉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여인은 난민으로, 에게 해를 건너 조금 전 섬에 도착했다. 섬에 다다르기까지 여인은 망망대해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을 것이다. 여인을 바라보고 있던 사진 기자는 으레 생각했다. 아마도 여인은 다시 살아났다는 환희에 차 저 찬란한 일출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 거라고. 사진 기자는 조심스레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붙인다. 그리고는 이내 놀란다.

 여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야기 둘. 쌍둥이 남매가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지도 칭얼거리지도 않는다. 곤히 잠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다시 잠에서 깨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아침, 마을에 사린가스로 추정되는 독성 기체가 살포되었다. 두 남매를 비롯해 100여 명의 사람들이 독가스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깊고 넓은 구덩이를 파 자신의 가족이거나 친구였던 이들의 시신들을 함께 묻는다.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며칠간에도 수십, 수백의 사람들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세상.     


 앞의 두 이야기는 작년 여름 로이터 사진전에서 보았던 사진에 담긴 사연과, 2017년 4월 4일 오전 7시 시리아 반군 점령지인 이들리브 지역에 자행된 화학무기 공격으로 인해 벌어진 참상을 적은 것이다. 두 불행은 그 발생 시점과 당사자가 다를 뿐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불행의 고리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고, 아직까지도 끊어지지 않았다. 이 불행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 불행에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궁금했었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내게 앞서 두 장면 뒤 이어지는 후속편 같은 것이었다. 불행에 책임질 사람, 그가 누구인지 이제 나는 안다.


 영화의 이야기는 <부메랑>, <로세프트 50mg>, <Second Chances>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단편 영화 세 개를 연달아 보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각 파트에는 서로 다른 인물의 서로 다른 사연이 등장한다.


 #다프네     

장면 하나. 밤. 어두운 골목길. 다프네가 두 남자에게 강간당할 뻔 했을 때, 그녀를 도와준 이는 파리스였다. 파리스는 두 남자들 사이로 달려들어 다프네가 도망칠 기회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파리스는 여느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백마 탄 기사나 영웅의 전형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는 내전을 피해 죽음의 에게 해를 건너 그리스로 넘어온 이민자였으니까.      


장면 둘. 낮. 아주 환한 장터 골목. 검은 옷을 입은 장정들이 차에서 내리더니 모여 있던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기 시작한다. 평화로운 듯 보였던 골목,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검은 옷 사내들. 보수집단 ‘Pilgrim' 회원들이다. 자신들의 나라 그리스가 난민들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해 그리스에 머무는 난민들을 소탕하려 한다. 겁에 질린 난민들은 장정들이 휘두르는 몽둥이를 피해 나가는 길목을 찾아 달려보지만 이미 모든 길목을 검은 옷의 장정들이 막고 섰다.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Pilgrim 일당은 사람들을 길 안으로 몰아넣고 닥치는 대로 두드려 팬다. 그 두드려 패는 사람들 가운데 다프네의 아버지가 있다. 그 얻어맞는 사람들 가운데 파리스가 있다.     


장면 셋. 낮. 폐공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혼돈의 그리스에서도 사랑이 시작된다. 다프네와 파리스는 폐공항의 드넓은 활주로를 손을 맞잡고 달린다. 기쁨에 겨워, 행복에 겨워 달리다 쓸모없이 버려진 비행기 안에서 사랑을 나눈다. 사랑에 빠진 연약한 남녀에게 아늑한 보금자리가 된 버려진 비행기.

다프네와 파리스(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장면 넷. 밤. 폐공항.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이번에는 폐공항을 덮쳤다. 갈 곳 없는 난민들이 머물고 있던 곳. 총을 들고 쫓아오는 Pilgrim 조직원들을 피해 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린다. 죽음을 피해 고국을 떠난 이들이, 더 이상 떠날 곳도 없는 이들이 다시 죽음을 피해, 살기 위해 달린다. 비행기 안에서 곤히 잠들었던 다프네와 파리스도 비행기에서 빠져나와 달린다. 버려진 비행기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둘만의 도피처를 꿈꾸며 달린다.     


 다프네는 그리스 신화에서 숲의 정령(Nymph)이다. 신화에서, 정령의 죽음은 그들이 깃들어 있는 자연물의 소멸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다프네와 함께 소멸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소한 행복이었을까, 아니면 사랑?  

   

 #Worlds_apart     

장면 다섯. 복지의 나라 스웨덴에서 온 여자는 국가 부도를 맞은 그리스에 사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우울증 약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시간 맞춰 로세프트 50mg을 복용하고 끊임없이 담배를 피우는 남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불행은 그녀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녀는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자신이 남자에게 명백한 가해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녀는 그의 처지를 헤아리기 시작한다. 마지막에 여자는 남자를 이해하게 될까. 떨어진 세계는 마침내 하나의 세계가 될 수 있을까.

엘리제와 지오르고. 지오르고 역은 영화의 감독이기도 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가 연기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장면 여섯. 현대 사회의 경제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 된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오로지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지배하는 시장구조에서 개인은 자본과 다르지 않은, 아니 자본보다 못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개인은 소모품으로 취급된다. 경제 위기 이후 그리스의 자살률이 치솟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바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영화에서 불행에 처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우리는 결말을 보기도 전에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SecondChances     

장면 일곱. “나는 매주 이 슈퍼마켓에 와요. 무엇도 살 수 없는데도 버릇처럼 온다고요.” 국가 경제가 무너지고 따라서 가계 경제가 파탄이 나 이제 무엇도 살 수 없게 되었는데도 그녀가 슈퍼마켓에 오는 것은, 그것이 그녀의 몸에 깊이 인 박혀버린 관성적 행위, 즉 습관이기 때문이다. 평생에 가까운 시간을 마리아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집안의 살림을 돌보고 식구들의 뒷바라지를 해왔다. 부질없이 매주 슈퍼마켓에 와서 마리아가 불행을 느끼는 까닭은, 돈이 없어 무엇도 살 수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더 이상 식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자신이 무가치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마리아와 세바스찬.(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장면 여덟. 다행히도, 텅 비어버린 마리아를 채워줄 수 있는 존재가 그 슈퍼마켓에 남아 있었다. 영화에서 슈퍼마켓은 항상성과 가변성이라는 양면성을 지닌 공간이다. 마리아가 말도 통하지 않는 독일인 세바스찬과의 만남에 젖어드는 이유는, 세바스찬과 공유하는 시간 덕분에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졌던 슈퍼마켓 방문이 설레고 행복한 이벤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바스찬과 함께, 이제는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채로 마리아 자신의 삶을 살 두 번째 기회를 그녀는 잡을 수 있을지.     


 영화를 관통하는 목소리가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바스찬 역을 맡은 J.K.시몬스. 맞다. 영화 <위플래쉬, 다미엔 차젤레, 2014>에서 폭군으로 군림했던 그 사람. 실제로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의 감독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위플래쉬>를 보고 J.K.시몬스를 세바스찬 역에 캐스팅했다고 한다. 감독의 목소리를 대신해 관객에게 진리를 전달해 줄 절대자가 필요했던 모양. 어쨌거나 J.K.시몬스는 감독의 바람을 충실히 채운 듯 보인다. <위플래시>와 달리 몹시도 온화하고 다감한 온도로. 심지어 그는 섹시하기까지 했다.

J.K. 시몬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세바스찬을 독일인 역사학자로 설정한 것은 흥미롭다. 난민 대란과 국가부도사태를 맞은 그리스를 배경으로 인간관계의 철학을 고민하는 영화에서 감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독일인 그리고 역사학자라는 점이 흥미롭다는 말이다. 독일은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옳은지를 잘 알고 있는 나라다. 독일인들은 과거 나치가 저지른 만행과 학살을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고 다시 그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결심을 날마다 가슴에 새기며 살아간다. 영화에서 서술되는 국가 파시즘의 부활과 유럽의 분열. 약자에 대한 불관용과 이기주의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말하기 위하여 감독은 세바스찬을 독일인 역사학자로 설정한 것일 테다. 독일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Second Chances는 있다.     


 언뜻,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Love Actually>나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로맨틱 홀리데이(원제: The Holidays)>를 떠올리게 한다. 옴니버스 식 구성을 취하는 로맨스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또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들과도 꽤나 느낌이 비슷한데, 인물들의 이야기만큼이나 도시의 풍경을 정성스레 프레임에 담아내는 점에서 그렇다. 장소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느껴진달까. 로맨스만 놓고 본다면, 우디 앨런의 그것이 조금 더 유쾌하다. <나의 사랑, 그리스>의 로맨스는 상대적으론 차분한 편.   

  

 나 역시 우디 앨런을 몹시, 아주, 무척 좋아하지만,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심장이 뛴 것은 영화를 보며 우디 앨런이 떠올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 나는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를 보며,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거장 켄 로치를 보았다.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켄 로치 감독은 그간 영화를 통해 꾸준히, 인간 본성과 인간관계의 철학을 탐구해왔다. 그는 영화를 통해, 현실과 괴리된 제도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외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내면서도 사람에 대해서는 애정을 표현해왔다.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그와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Worlds Apart>이다. 떨어져 있어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세계들이, 그리하여 자꾸만 이기의 우를 범하려는 세계들이, 서로를 포용하고 함께 존립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해법을 감독은 사람에게서 찾고 있었다.     


 다시 불행에 대한 이야기. 불행에 책임질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불행의 근원이 어디에 있든 우리에게 닥친 불행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불행을 몰아내고, 불행이 아닌 행복을 우리의 삶에 끌어들이는 일은 모두 우리가 직접 해야 할 몫이다. 그 과정은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지루하며, 쉽지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Second Chances는 있다.

누구에게나 Second Chances는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추신. 영화에서는 사랑을 통해 Second Chances를 잡으라고 한다. 나는 사랑만능주의자는 아니다. 그래도 이 영화의 철학에는 동조한다. 왜냐고? 내가 묻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랑이 어떠한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랑 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기는 한가? 뭐라고? 합리적 이성? 이런 쯧쯧.

사랑?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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