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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Oct 07. 2017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감독

누군가 함께해 준다는 것.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여성의 이야기.

약속대로라면, 김종관 감독의 2010년 작품 <조금만 더 가까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러 글감이 될 만한 작품들은 감상을 미루어 두기도 했다. 그렇기는 하였어도 <아이 캔 스피크>를 보았고, ‘글을 쓰겠구나......’ 생각하였으니, 쓰기로 한다.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 올릴 것이다. ‘시리즈’ 기획을 접을 뜻은 없다.


“밥은 먹었느냐?”     


생각하지 못 했다. 관계가 깨어져버린 후에 다시 찾아온 민재(이제훈)를 보는 옥분(나문희)의 표정은 그토록 애매했다. 원망인 것도 같았고, 반가움인 듯도 했고. 하여튼, 옥분이 이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도통 모르겠는 표정으로 옥분이 이 말을 꺼내었을 때, 눈물과 한숨이 함께 터져 나왔다.     


“밥은 먹었느냐?”는 질문이 진부하다고 생각해왔다. 그 물음이 어째서 의미를 지니는지 진정으로 이해해 본 적은 지금껏 없었다. 오늘에서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밥은 먹었느냐?”는 말은 ‘How are you?’이고, I miss you … 그리움이고, 미안함이고, 용서다. 가장 따뜻하면서, 쿨한 인사다. 그 말 한 마디면, 다시 함께할 수 있다. 옥분과 민재가 다시 함께하기 위해 그 말이면 충분했다. 영화는 그것을 알았다. <아이 캔 스피크>는 ‘연대’,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또박또박, 씩씩하게 이야기하는 영화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는 밥이 중요하다. 나옥분과 박민재 두 인물이 함께하는 데 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기가 생 라면을 먹고 있어서…” 집에 와 밥 먹고 가라고 했다는 나옥분 할머니는, 불필요한 오지랖을 부려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속정이 많은, 외로운 인물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꿈을 접어둔 채 고등학생 동생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던 민재 역시, 적당히 처세하고 대체로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느라 정은 주는 법도, 받는 법도 모르는 인물이다. 영어를 가르쳐 달라며 찾아오는 나옥분 할머니를 영악하게 밀어냈던 민재가 할머니의 영어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을 바꾸는 것은, 동생이 나옥분 할머니의 집에서 밥을 먹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다. 민재의 변심은 굳이 호명하자면, 밥값이라기보다 정값이랄 수 있는, 연대의 시작이었다.     

그냥, 함께 있는 거다. 그게 의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영어실력도, 정(情)도 일상 가운데 차곡차곡 쌓인다. 나옥분 할머니와 민재는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술도 마신다. 인물들이 맺는 관계의 밀도는 서사가 발전할수록 두터워진다. 두 인물의 연대를 이끌어내고, 발전시키고, 회복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다. 민재 동생 영재(성유빈)다. 고등학생인 영재는 어른들의 복잡미묘한 속사정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외롭게 자라서 타인의 외로움을 들여다 볼 줄 안다.     

인물들 간의 연대가 갈등과 회복을 지나 가장 공고해졌을 때, 영화는 보다 무게감 있는 사연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 사연이란, 나옥분 할머니가 외롭게 살아야 했던 까닭이고, 그토록 간절하게 영어를 배워야 했던 까닭이다.     

나옥분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생존자다. 일본군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을 때, 나옥분 할머니는 13세의 여성이었다. 일본군은 나옥분의 육체를 강압적으로 침해, 능욕하여 종국에는 나옥분의 모든 것을 말살시키려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제 목숨을 끊는 것밖에 없었던 소녀 나옥분(최수인)은, 마지막 존엄과 주체성이나마 포기할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다. 올가미에 걸린 나옥분을 살린 사람은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정심’(손숙, 이재인)이었다. 나옥분, 그리고 문정심은 나옥분이고 문정심일 뿐 아니라, 당시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되었던 수십만 여성들의 명백한 이름이다.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감추려 했던 나옥분 할머니가 미국 하원 의원의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 통과를 위해, 미 하원 의원 공개 청문회에 나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것이 문정심 할머니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옥분에게 정심은 지옥을 견디게 한 단 하나의 이유였기에, 지옥을 함께 살다 손잡고 걸어 나온 사람, 문정심 할머니의 뜻을 자신이 맡아 이룸으로써, 나옥분 할머니는 평생 견디며 살아야 했던 수치와 울분, 고독의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보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옥분 할머니가 불신과 냉소, 적대로 무장한 사람들 앞에서, 시간이 흐르며 더욱 낱낱해진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How are You?”, 당신 괜찮으냐고 물어줄 민재가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당신, 괜찮으십니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단 한 사람만이라도 곁에 있어준다면. 그 사람이 나의 손을 잡아준다면. “밥은 먹었느냐?”고 습관처럼 물어준다면. 사람은 지옥에서도 견디어 볼 힘을 낼 수 있고, 자신을 억압하려는 자들 앞에서도 용기를 내어 볼 수 있다. <아이 캔 스피크>를 보며 그것을 알았다.     

살아갈 용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나옥분 할머니가 자신의 상처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였을 때, 한편으로 얼마나 큰 두려움이 그녀를 휩쓸고 지났을 것인지. 그것을 차마 헤아릴 수도 없어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그러나 수치는 그녀의 것이 되지 않아야 했다. 나는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두렵기는 해도, 나옥분 할머니와 함께 당당하고 싶었다. 할머니가 당당해서, 나는 그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나옥분 할머니 사랑합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아이 캔 스피크>는 여성 영화다. 주인공 나옥분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피동적 인물은 아니다. 외부의 폭력이, 억압이, 외면과 멸시가 나옥분 할머니를 기어코 꺾어 버리려 하였어도, 그녀는 꺾이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뜻으로 행동하고 크게 말하며 다른 사람까지 포용하려 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물이었다. 영화가 그녀를 그렇게 표현해냈다. 깊이와 섬세함이 다소 아쉽기는 하였어도, 영화의 서사가 나옥분 할머니의 행위의 실천에, 삶에 의문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 점은 두고두고 기억할 만 하다.


* 제목 및 본문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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