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glise Saint-Pierre de Montmartre
고양이가 가장 높은 곳에서 자신이 사는 공간을 조망하듯, 사람들도 여행을 가면 꼭 전망대를 찾아 탁 트인 시야로 도시의 전경을 바라본다. 아마도 한정된 여행 기간 속에서, 미처 발걸음 하지 못한 곳까지 도시 전체를 한눈에 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파리에는 여러 전망대가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인공 구조물이 아닌 해발 130m 위에 자리한 몽마르트 언덕(Montmartre)이다. 사람도 많고, 치안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 늘 주위를 경계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만은 포기할 수 없다.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이 바로 앞이어서 그럴까? 언제나 몽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내가 안고 있는 삶의 문제나 켜켜이 쌓인 묵은 감정들을 차분히 가라앉혀 준다. 수많은 인파 속 사진 찍느라 바쁜 사람들 속에 그림자처럼 가만히 앉아 멍을 때리고 있으면, 머릿속 가득 표류하던 생각들이 서서히 침전되기 시작한다. 나에겐 소란 속에 고요 혹은 도심 속에 숲과 같은 공간이랄까?
사실 몽마르트는 예술가들의 언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순교자의 언덕이기도 하다. 몽마르트라는 이름 자체가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하였다. 3세기 로마 시대, 프랑스에 기독교가 전파되던 초기에 파리의 첫 주교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수호성인 성 드니(Saint Denis)가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순교의 피가 스며든 언덕이자, 신앙과 예술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숭고함 때문일까 이곳은 파리의 화려함과는 달리 마음을 정화해 주는 힘이 있다.
밤낮으로 화려한 예술가들의 거리,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을 지나 지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오래된 건물, 작은 카페를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몽마르트에 오면 비밀의 작은 성당에 잠시 머물러 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너무 걸어서 다리가 아파, 사람이 없는 곳을 찾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곳이다. 좁고 인구 밀도가 높은 몽마르뜨의 거리는 어디를 가도 발 디딜 틈이 없기에, 인파에 밀려다니다가 정말 피신처처럼 찾아들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인 몽마르트 생피에르 성당은 12세기 초반 몽마르트 수도원(Abbaye de Montmartre)과 함께 설립된 작은 성당이다.그래서 규모는 작지만, 아름다움과 시대적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다.
난 작고 시간이 묻어나는 공간들을 좋아한다. 좁고 아담하지만 고요함과 장엄함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살아있다. 성당의 석재와 구조가 중세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 시간을 저절로 상상하게 만드다.
무엇보다 바로 이곳이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친 실제 배경이 된 공간이라는 사실. 19년을 감옥에 있다 나온 차가운 세상 속에 도망치듯 찾아들었을 성전. 어쩌면 장발장과 미리엘 주교가 나누었을 장면들을 떠올려 본다. 한 사람의 자애과 사랑이 상처 받은 한 영혼에게 전한 깊은 위로, 맑은 눈동자에 어린 이야기들을 어느새 이 공간에 가득했다.
몽마르트 언덕에 왔다가 관광의 혼잡 속에서 잠시 쉬어 가고 싶다면, 중세로의 역사여행 또는 소설 속으로 시간 여행을 해봐도 좋을 듯 하다. 역사적, 건축적, 종교적, 문화적 의미가 있는 조용한 성지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여행의 이유를 찾아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