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le des Blancs Manteaux
크리스마스 주간,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찾아 마레지구 골목 구석구석을 탐험하고 있었다. 파리 동쪽에 위치한 오래된 고급 저택, 부티크, 편집샵, 갤러리 그리고 서점으로 가득한 마레지구는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 아닐 수 없다. 눈길을 끄는 공간이 너무 많아서 다 들어가진 못하고 창밖으로 한참 탐색을 한 후 그래도 "오!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면 들어선다. 뭔가 뻔한 거 말고, 받으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질 수 있는 맞춤 선물을 찾는 것이 미션이다.
마레라는 뜻은 늪, 습지라고 한다. 17세기 이전에는 이곳이 모두 늪지대였다고 하는데 정말 아직까지도 사람을 헤어날 수 없게 하는 마력이 있는 곳이다. 역사와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고 있어서일까 마치 미로 속에 들어와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다. 한적하고 조용한 듯 하지만 한 골목을 지나치면 활기가 넘치고, 또 힙한 감성이 가득 찬다 싶으면 또 한 번 고풍스러움이 펼쳐진다. 무언가 걷기만 해도 무한한 상상력이 솟아난달까?
그렇게 한참 길을 걷다 우연히 파리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예술박람회를 발견했다. Expo 4 Art.
Halle des Blancs Manteaux라는 문화 복합센터에서 열리는 이 박람회는 2015년부터 매년 네 번 자신의 알리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작품을 전시하고 관객들과 교류하며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한국의 아트페어와 비슷한 개념인데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오브제 디자이너까지 예술가들이 함께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하나의 에너지로 발현하고 있었다. 과감한 색채 속의 안정된 조화로움, 저마다의 표정과 감각이 살아있는 개성 넘치는 작품들, 그리고 무엇보다 패션으로도 하나의 오브제로 존재하는 듯한 예술가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참을 구경하다가 엄마가 좋아할 만한 그림 한 점을 구매했다. 파리에 와서 가장 큰 소비였지만 뒤돌아서봐도 전시회장을 세 번이나 돌며 고뇌를 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큰 맘먹고 데려와 버렸다.(뿌듯!) 마레 어디를 가도 좋지만 낯선 예술적 시선, 시적인 예술가와의 소통,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작품을 만나기 원한다면 한 번쯤 발걸음해도 좋을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밤하늘 총총 떠있는 작은 별을 보며 문득 알퐁스도데의 '별'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생각과 영감이 내 안에 가득한 밤. 별들 가운데 가장 곱고 빛나는 별이 길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잠든 것만 같은 청명한 밤이었다.
다음엔 수채화 가족사진을 한번 그려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