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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드리운 오후

Académie du Climat

by Yule

사랑하는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나에겐 파리가 그렇다. 아마 콩깍지 일수도 있는데 좀처럼 벗겨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특히 각 국이 자발적으로 설정하고 국제사회에 제출하는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변화 적응 목표와 실행 계획조정을 하는 요즘, 자연스레 파리협정을 자주 언급하게 된다. 2015년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는 모든 당사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기로 한 최초의 기후변화 국제협정이 채택되었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C 이하로 제한하고, 1.5°C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글로벌 목표는 지금도 전 세계 기후변화문제에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그래서 외부 발표가 있을 땐 이 내용을 가장 좋아하는 파리 사진과 함께 넣는다. 긴장도 풀 겸,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니까.


여행길에서 업무 생각하는 건 반칙이지만, 기후변화의 기준점이 된 이 도시에 서있을 때면 이들은 어디에 시선을 두고 누구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게 된 특별한 공간이 있다. 무려 파리 4구 마레 지구에 위치한, 모두에게 열려있는 기후 및 환경 교육 공간 Académie du Climat이다.


2015년 파리 협정 이후 2019년 7월 9일, 파리시는 공식적으로 기후 비상사태(Climate Emergency)를 선언한다. 기후변화가 인류와 도시의 미래에 심각한 위협임을 인정하고, 강력한 도시 차원의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 것이다. 현재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폭염, 대기오염, 홍수 등 도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구체적 적응계획 수립하고, 이를 시민 사회와 협력하여, 특히 청년과 지역 단체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기후 전환(City Climate Transition) 전략의 핵심 거점을 만들었다.

첫 단추는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접근성이 좋고 모두가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장소는 자연스럽게 실천을 유도하는 살아있는 기후 교육 플랫폼이 된다. 목표는 시민과 정책의 연결이다. 기후 관련 정책을 알리고, 시민 의견을 수렴해 정책 개선에 반영하는 것이다.


공간구성도 다채롭다. 교육을 주요 목적으로 하지만 지루한 교실형 구조가 아니다. 기후 관련 서적과 자료를 살펴보고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는 도서관, 제철 재료와 저탄소 요리법을 배우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실습을 해볼 수 있는 요리 스튜디오, 도시 농업과 정원, 생물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는 옥상 정원까지 테마별로 구석구석 흥미로운 체험공간 마련되어 있다. 뜨거운 토론이 오가는 세미나실에서는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NGO와 대학이 함께 개최하는 강연에서는 시민과 전문가가 자유롭게 의견을 교류한다.

이곳에서는 청소년 교육도 함께 실시된다. 9세-15세를 대상으로 한 기후 수업에는 (Climate Classes) 교과 과정과 연계한 환경 과학 실습, 탄소발자국 계산, 에너지 절약 게임들이 진행된다. 그동안 내가 구상하고, 기획하고, 발표해 온 모든 생각들이 이곳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남녀노소 나이 상관없이 누구라도 편안하게 들러 잠시 정원에서 쉬었다가, 옥상에서부터 건물을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며 보면, 자연스레 '참여' 하며 배워가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다른 거 없이, 마레지구에서 쇼핑에 지쳐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 차 한잔과 함께 우거진 정원 그늘 아래 잠시 쉬어 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공간이다. 학교 같으면서, 전시회에 들어온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론 도심 속에 작은 공원이 놓인 신비한 장소가 아닐 수 없다.

파리시의 기후비상사태 선언 이후 런던, 뉴욕, 서울 등 2,000여 개 도시와 지방정부가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이는 기후변화가 더 이상 추상적인 글로벌 어젠다에 그치지 않고, 도시 차원의 정책, 시민 참여, 지역 차원의 실천으로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나 역시 정책 제언에 참여하고 있지만, 늘 느끼는 것은 전략 그 자체만으로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원대한 계획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와 일상 속 행동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수치와 예측으로 점철된 숨 막히는 문서 속에서 우리는 종종 묻는다. “과연 누구와 함께 어떻게 이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여행길에 만난 바로 이곳에서, 시민과 직접 연결된 공간과 활동, 작은 참여의 기회를 통해 변화가 싹튼다는 사실을 나는 몸으로 체감한다.


그저 상징적인 선언이 아니라,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정원에서 쉬는 시간 속, 아이들이 게임을 통해 탄소발자국을 계산하는 순간 속에서, 정책은 살아 있는 경험으로 변한다. 언제나처럼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나는 또 한 번 꿈의 퍼즐 조각을 맞춰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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