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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별이 반짝이는 이유

Musée Curie

by Yule

나는 한때 과학자를 꿈꾸는 소녀였다. 우연히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동료들은 "네가 바로 STEM4 Girl이었어?" 하고 놀라움을 표하곤 한다. 사무소에서 여학생들을 위한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교육 장려 프로그램을 큰 규모로 하고 있다 보니 더 반갑게 느끼는 듯하다. 사실 학부로 생화학을 전공했는데, 당시엔 새로운 현상이나 사실을 탐구하면서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막연히 꿈꿔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배경엔 한 인물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밤하늘 같이 깊은 흑백사진 속 두 눈이 별처럼 반짝이던 마리 퀴리 (Marie Curie)였다.


지금은 다양한 발음으로 불리는 한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지만 나에겐 두 개의 영어 이름이 있었다. 그 첫 이름이 바로 Marie였다. 영화였는지 다큐멘터리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작고 여리지만 누구보다 강인했던 한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사회적 편견과 고난에 맞서 나가는 이야기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 계기로 그녀에 대해 깊이 탐독했고 한동안 닮고 싶은 그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가진 모든 물건엔 방사선 단위 Ci를 이니셜처럼 적어 두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또 한 번은 Joanne. 해리포터의 찐덕후인 것으로 갈음해 둔다.


파리 5구 라탱 지구(Latin Quarter)에는 마리 퀴리(Marie Curie)와 피에르 퀴리(Pierre Curie)의 연구 업적을 기념하는 박물관이 있다. 생물, 의학, 물리, 화학분야가 협력하여 라듐과 그 활용에 대해 연구하지는 취지에서 1914년에 세워진 라듐 연구소 (Institut du Radium) 안에 위치해 있는데 마리 퀴리가 연구했던 실험실과 개인 물품, 과학 장비, 문서가 그대로 남아있다. 뤽상부르 공원에서 10분 정도 걷다 보면 Rue Pierre Curie의 길이 반갑게 맞아준다. 평일 낮시간이라 한적할 줄 알았는데 작은 규모의 박물관임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찾아 관람을 하고 있었다.

La seule à avoir deux Nobel dans deux sciences différentes
두 개의 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서 두 번의 노벨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


이곳 퀴리 박물은 퀴리 가족 모두가 인류를 위해 함께 일궈낸 기록이 담겨있다. 그녀의 남편 피에르 퀴리는 1903년, 마리와 함께 첫 번째 노벨상을 수상했다. 당시 여성의 노벨상 수상이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절 자신만 후보에 오르자 마리의 중요한 업적을 빼고 자신만 지명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함께가 아니면 상을 받지 않겠다고 탄원서를 낼만큼 강력한 연구적 동반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마리는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인체에 박힌 총탄이나 파편을 수술 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방사선 X-ray 장비를 구급차에 싣고 전쟁터에 나서기도 했는데, 이때 그녀의 딸 이렌 졸리오-퀴리(Irène Joliot-Curie)가 동참했다. 이곳엔 작은 마리로 불린 그녀가 이후 인공 방사선 원소 연구로 노벨 화학상(1935년)을 수상한 연구 흔적까지 모두 남아있다.


무엇보다 이곳엔 실제 마리 퀴리가 사용하던 실험대, 실험 기구, 유리 용기들이 남아있어 더 특별하다. 그녀가 직접 적었던 손글씨 노트, 사진, 개인 소지품, 편지들이 전시되어 있어 마치 그녀의 숨결이 아직 이 공간에 머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실험대와 책상의 형태가 그때와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같은 공간에서 그녀의 흔적을 아직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파리는 어쩌면 자꾸만 나의 어린 시절의 꿈을 일깨우는 걸까? 작은 기념품 가게까지 보고 뒤뜰로 나서면 실제 마리 퀴리가 거닐었을 작은 정원이 나온다. 지금도 가까운 연구소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이곳은 커다란 나무 그늘, 작은 꽃밭과 벤치가 놓여있어 도심 속 고요한 사색에 잠길 공간을 내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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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가족은 자신의 연구를 자신의 것으로만 돌리지 않았다. 열악한 실험실에서 방사능에 노출되며 만들어낸 모든 실험과 연구결과는 인류 모두의 것이 되도록 사회에 환원했다. 그중에서도 라듐은 특히 방사선 치료에 사용되며 의학 발전에 큰 기여 한다. 여성에게 과학의 문이 거의 닫혀 있던 시대, 그녀는 그 문을 스스로의 힘으로 연 선구자였다. 무엇보다 단순히 과학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연구를 통해 인류애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어릴 적 멘토였던 그녀를 이렇게 내가 사랑하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건 선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가 연구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종종 머물렀을 그 작은 정원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한참을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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