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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

Pour moi ce n'est juste une ville

by Yule

지난봄 또다시 파리에 간다고 하니, 동료가 나에게 묻는다.


"거기에 도대체 뭘 숨겨 놓은 거야?"


그러게 말이다. 왜 나는 틈만 나면 파리행 항공편을 검색하고, '여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이 도시를 떠올리는 걸까? 가족들과 함께여도, 친구들과 또는 홀로여도 좋다. 세련되지만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공존하고, 오래되었지만 투박하지 않으며, 타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색을 지키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고유의 멋이 음악처럼 흐르는 곳. 아마 이것이 내가 이 도시를 오래도록 끌어안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파리는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이 이미 수없이 기록된 도시라, 또 하나의 안내서를 쓰는 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가 아닌,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진 여행가가 걸어 본 엉뚱한 여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슈퍼 J로 살아가는 나에게, 유일하게 틈과 여유를 허락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걷는 대로 모든 발걸음이 길이 되었다. 익숙한 낯섦 속 매일 끊임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말을 걸었다. 나는 언제 완벽한 행복을 느끼는지, 무엇에 감응하며 어떤 순간에 영혼의 파동을 느끼는지 스스로를 거울처럼 비춰보는 시간이었다. 잊고 지냈던 어린 날의 꿈의 조각들, 아직도 살아 숨 쉬는 배움에 대한 갈망, 우연이 허락한 길 끝에서 만난 한 떨기의 부끄러움까지. 어쩌면 파리에서의 시간은 나에겐 한 폭의 자화상이 아니었나 싶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쓰고 보니 다시 읽어보는 서투른 나의 자화상이 제법 마음에 든다. 사진 몇 장이 아닌 나의 글로 찬란한 시간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작은 위로가 된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올망졸망한 이야기를 하나로 묶고 나니,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리고 내가 걸어온 시간들이 어쩐지 근사해진 기분이다. 여행에 나를 입혀보자. 다른 사람들이 이미 발견해 놓은 장소에 발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 발견하고 싶은 것을 낯선 환경 속에서 찾아가는 것이다.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속으로, 당신을 초대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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