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Le Gouvernement provisoire de Corée

by Yule


파리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획일성 속에 깃들어 있는 낭만이다. 발코니가 가득한 옛 오스만 양식의 건물이 늘어선 거리를 걷고 있으면 새삼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한 건물들이 도시 전반을 품고 그 사이 현대적인 건물들이 조화롭게 자리한 Rue는 진정 파리라는 상징성을 완성시킨다. 이 특별한 소풍 같은 길 위에서 한국인이라면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 하는 곳이 있다.

사실 보고자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다. 빵순이로 하루 세끼 빵만 먹다가 급하게 한국식당을 찾지 않았다면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파리 9구 Châteaudun 38번지. 이 길 위에는 1919-1920년 대한민국 파리주재 임시정부 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2006년 한국-프랑스 수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삼일절에 맞춰 역사의 의미를 기록하기 위해 현판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구글 지도를 따라가다가 발견한 반가운 단어 Corée. 해외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애국심이 고취된다. 특히나 대한민국의 위상이 남달라 진 요즘 한국 여권을 가지고 다니면 유난히 반가워해 주고 이미그레이션에서도 종종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주기도 하기 때문에 마치 외교 사절단이 된 것 같은 책임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라는 단어를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었다.


큰길 위에 이어진 익숙한 건물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어렵게 작은 현판을 발견했다. 그저 수많은 건물 속 마알간 은빛 기록을 마주했을 뿐인데 순식간 마음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한글로 적혀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멀고 먼 타국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던 동양의 이방인이 마주했을 이 거대한 문. 나라를 잃은 임시 정부의 대표로서 짊어진 그 책임과 무게를 이 작은 현판 하나로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약소국 아니 정식 국가의 지휘조차 받지 못한 당시 임시정부 위원회는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으나 결국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 아닌가. 위원회는 포기하지 않고 3·1 운동(1919) 이래 한국국내의 상황을 알리고 한국독립문제를 국제문제로 부각시켰다. 파리를 비롯한 유럽 주요 도시에서 한국문제에 관한 강연회를 개최하고, 국제회의에 참가하여 한국독립의 지원을 위한 호소를 이어나간 것이다.


특히 위원회 내에 한국 정보국(Bureau de Information Coréenne)을 설치하여 다양한 출간물을 발간했는데, 『자유 한국(La Corée Libre)』·『한국의 독립과 평화(L’Indépendance de la Coreé et la Paix)』 등을 영어와 프랑스어로 발행하여 펜과 목소리로 투쟁을 이어나갔다. 당시 국제외교의 중심지였던 프랑스로 이주하여 프랑스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3.1 운동 이후 일본경찰에 의해 수배를 받게 되면서 상해를 거쳐 프랑스로 건너온 서영해 독립운동가는 세계최초 언론학교인 ‘고등사회연구학교(École des Hautes-Études Sociales)’ 에서 수학하고 자신의 숙소에 ‘고려통신사(Agence Korea)’를 설립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이어나가던 그는 첫 역사소설인 『어느 한국인의 삶』을 프랑스어로 발간하여, 대공항 시기 정가 15프랑의 책이 1년 만에 5판이 인쇄되는 반향을 일으킨다. 무려 「독립선언서(Déclaration d’Indépendance la République de Corée)」 전문이 실린 책 속엔 창칼에 무너진 민족의 아픔과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20250307110130.png
20250307110152.png


여행의 길목에서 우리의 고통스러운 흔적 그리고 기록을 발견한다는 것은 반갑지만 아프기도 하다. 그리고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길고 긴 밤을 지나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참 많아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시간은 흐르고 같은 공간 그때 그 모습은 상상으로 가늠해 볼 뿐이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밤새워 골몰했을 그 고귀한 시간들에 마음을 포개본다. 보이지도 들리지 않는 아득한 시간을 헤쳐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을 연소하여 이 도시의 그림자가 된 분들을 따라 오늘도 빛의 도시를 찬찬히 걸어본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보이지 않는 나라의 숨,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말
먼 곳 어렵게 헤치고 온 아득한 시간 속을 가면서

-마종기/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keyword
이전 04화초록이 드리운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