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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May 17. 2022

쉐쉐의 단상

Human rights matter

요즘 지소연 선수의 아시아 패싱 이슈로 언론이 연일 뜨겁다. 영국 축구계 인종차별 문제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드디어 공동의 목소리를 냈다는 소식이 내심 반가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도 코로나 펜데믹 중 아시아 혐오가 번지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해외생활이 결코 녹록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물론 랑카도 아시아이긴 하지만 동북 아시아인=중국인=바이러스라는 편견이 워낙 팽배한 상황이고 관련 범죄 소식을 뉴스로 많이 접하기도 했으니까. 실상 내가 경험한 스리랑카는 외국인들에게 언제나 다정하고 친절했지만 아직 그 위험의 불씨가 아직 완전히 꺼진 건 아니었다.


현 스리랑카 정부와 중국과의 뿌리 깊은 역학관계 그리고 국가부도위기를 맞기까지 국가 부채의 상당량이 중국에서 기인한지라 국민들의 반중 감정은 나날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라는 중국과 유라시아를 동서로 연결하는 한편 그 끝에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잇는 원대한 실크로드의 재현을 꿈꿨다. 미국에 대항하는 거대 정치경제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건데 문제는 스리랑카가 이에 동참하며 막대한 자금을 중국에 빌렸고 빠져나올 수 없는 부채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이다. 채무 구제의 대가로 한반도타 항만을 중국에 99년 동안 양허하기로 결정했으니 400년 넘는 식민역사를 겪어온 랑카 사람들에게 또다시 빼앗긴다는 공포는 당연할 것이다.


반중 감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문제는 랑카 사람들이 동북 아시아인들을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워낙 중국이 높은 영향력으로 섬 깊숙이 침투해 있기도 하고 그들 눈에는 구분이 쉽지 않은가 보다. 이제는 반중을 넘어 혐중인 상태라 이 시국 태극기를 가슴에 붙이고 다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이 될 지경인데.. 문득 아시아 패싱과 결은 다르지만 그동안의 랑카 생활에서 느꼈던 편견과 오해의 순간들이 머릿속을 지나쳐간다. 예컨대 택시를 타면 기사님과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다.


기사: “ 넌 중국에서 왔니?

나: “ 아니요.”

기사: “그럼 일본?”

나: “ 거의 다 왔는데 맞춰볼래요?.......(긴 침묵)....... 한국이요.. 남한!”

기사님: 오! 한국 좋은 나라지!


사실 이렇게 물어봐주기라도 하면 고맙다.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이미 국적을 특정 지은 후 말을 건넨다. 상점에 들어가면 “ 니 하오” 그리고 계산할 땐 “쒜쒜”. 자매품 "곤니찌와" 그리고 "아리가또"도 종종 듣는다. 사실 일부러 모욕을 주려는 의도라기보다  잘 몰라서 묻는 경우가 대부분 그리고 아주 가끔 놀리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래서 일상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나만의 대응도 단계적으로 진화해왔다.


1단계:  호소

현지인: “니 하오!”

나: “(영어로) 동북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중국인은 아니에요. 우리는 국적, 문화 그리고 언어가 다릅니다.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인사를 하고 싶다면 먼저 어디서 왔는지 물어봐 주실래요? “


이건 사실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매번 이렇게 공들여 설명을 하기도 힘이 들고 귀찮아서 대충 넘어가게 된다. 그러다 오랜 개도국 생활 경험을 가진 친구로부터 인종차별에 대한 참신한 대처방법을 어깨 너머 배우게 된다. 바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법이다.


2단계: 역지사지

현지인: “ 니 하오!”

나: (손을 합장하며) 나마쓰떼. 압쎄 밀까르 쿠쉬 후이 :)


그야말로 똑같이 남아시아 사람들은 다 인도 사람 아니었어?라는 대응인데 무례함을 역지사지로 느끼게 해주는 방법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잠깐 멍-하다가 “아... 미안해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라고 사과를 하곤 했다. 사실 이 충격요법은 잠깐은 속이 시원 하지만 곱씹을수록 씁쓸해지고 나 역시도 부끄러워지는 방법인지라 계속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러면 나라고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그냥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나아가는 것이다. 일종의 해탈이랄까?  


3단계: 손 내밀기

현지인: “쉐쉐”

나: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 (영어로) 프럼 코리아! “


그러면 대부분은 “ 오! 한국 알아요. 한국 좋아요.”라고 훈훈하게 마무리되기도 하고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돼서 마음도 훨씬 편하다. 그리고 요즘은 K-drama나 K-pop의 영향으로 이렇게 먼저 인사를 건네면 적지 않게 한국말로 대답해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앞으로 길거리에서 수많은 니하오... (아니 고백 투 차이나 이려나?)와 분노의 눈빛이 시도 때도 없이 화살처럼 날아올 듯하다. 어쩌면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단계별로 진화해 온 경험이 있어 다행이지 싶다. 랑카 사람들의 마음엔 이방인의 호소를 들어줄 여유도 그렇다고 역지사지를 되받을 정도로 평화가 없으니 말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먼저 손 내밀기 그리고 작은 미소로 대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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