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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Aug 29. 2022

모두의 정원, 우리의 아뜰리에

Vihara Maha Devi Park

사무소가 이사하면서 매일 출퇴근길이 길어졌다. 원래 걷던 길에 두 배 거리라 힘이 들기는 하지만 왕복 이동으로 하루 만보 넘게 찍어주니 훌륭한 걷기 운동이 아닐 수 없다. 거센 비만 오지 않는다면 오디오북을 들으며 걷는 길은 조용한 사색 시간이 된다. 이런 여유가 가능한 이유는 길목에 위치한 Vihara Maha Devi Park (Victorica Park)을 지나치기 때문이다. 콜롬보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이 큰 공원은 참 다양한 존재들이 잠시 무거운 일상을 내려놓고 쉴 수 있도록 넓은 품을 내어준다.


우선 출근길엔 자전거 전용도로를 통해 걷다가 수풀을 헤치고 공원 중앙 지름길을 통해 간다. 아직 자고 있는 멍멍이가 수로 밑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히 주위를 살펴야 한다. 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조깅하는 사람들 그리고 경보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이따금씩 웨딩 사진이나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들과도 눈인사를 한다. 아침엔 비교적 햇살이 세지 않고 선선한 편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을 가장 선호하는 듯하다. 어쩐지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을 가장 일상적이고 친근한 장소에서 기록하는 모습에서 이 공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사실 그동안은 공원 내부를 자세하게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퇴근길엔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 인지 매일 다른 길로 걸어보려 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국립공원인 이 공간은 시청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이름은 독립 이후 싱할라 왕국 두투가 무누 왕의 어머니인 비하라마하데비 여왕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고 한다. 영국 통치기간 영국군이 점령하여 아직도 빅토리아 공원이라고도 불린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콜롬보 시민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이 공간을 만끽하고 있다. 나름 오랜 시간 콜롬보 구석구석을 탐구했다고 자부했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새로운 공간이 많은 것인지.

우선 초록 초록한 이 공원엔 신비스럽고 영험할 것 같은 나무들이 가득하다. 생김새도 다르고 종도 다른 이 나무들에겐 정성스럽게 이름표가 붙어있다. 향기로운 아카시아 나무부터 부처의 머리를 닮았다고 불린다는 신비스러운 꽃까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생생한 식물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부녀와 발걸음을 맞추며 따라가다 보면 살아있는 자연 공부도 하게 된다.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랑카에는 무서운 불개미들이 많이 사는데 (가끔 길을 가다가도 발이 따끔하다 싶어 보면 내 발등을 콱 물고 있다) 이 친구들은 집을 나뭇가지 위에 만든 다는 것이었다. 스리랑카 풍토상 비가 많이 와 땅에 집을 지으면 다 쓸려가기 때문이란다. 어찌나 재밌게 설명을 해주시는지 뒤에서 리액션을 할 뻔했다.


공원 중심에는 콜롬보 시청을 마주한 거대한 불상이 자리한다. 불교 신자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공원에 들어설 때 먼저 부처님께 인사를 드린다. 원래 이 자리엔 영국 식민지 시대 때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이 있었지만 독립 후 불상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중앙 분수를 떠라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여러 갈래의 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놀이공간이 나오는데 갑자기 가족 유원지에 들어선 느낌이다.  놀이터, 말들이 풀을 뜯는 작은 동물원, 그리고 작은 어린 친구들을 위한 코끼리 열차가 달린다. 더 안쪽엔 작은 정글과도 같은 인공호수가 있고 여기에선 오리배도 탈 수 있다. 아이스크림 차가 내는 삐뽀삐뽀 소리까지 듣고 있노라면 영락없이 놀이동산이다.

중앙 분수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좀 더 한적한 분위기의 여유가 느껴진다. 큰 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커플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가족 단위로 나무 그늘에 앉아 피크닉을 즐기기도 하고 누워서 책을 읽거나 캐치볼을 한다. 마치 나의 학창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일산 호수공원 같은 느낌이랄까? 도심 속에 이렇게 자연을 느끼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참 선물 같은 일이다. 사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공원 끝에 콜롬보 시립 도서관까지 있으니 정말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복합 문화단지가 아닐까 싶다. 여기서 문화생활을 좀 더 즐기고 싶다면 왼쪽엔 National Gallery가 접하고 있고, 미술관 앞 Street Gallery에서 그림도 감상할 수 있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시위 격화와 치안문제로 긴 출퇴근길이 무섭다고만 생각했는데.. 건강도 챙기고 랑카 사람들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이렇게 자연과 함께 이야기가 있는 길을 걷다 보면 좋은 생각과 글감들이 떠오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면 잠깐 벤치에 앉아 메모를 하며 풍요로운 아이디어를 뻗어보기도 한다. 따로 시간을 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도 생활 속에서 이곳을 더 가까이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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