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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Sep 13. 2022

찬란한 비상, 크리켓을 타고

Roar for the Lion, Sri Lanka!

스리랑카 전역이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바로 어제 2022년 아시아컵 크리켓 우승 챔피언을 거머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인도, 파키스탄을 꺾고 무패로 결승에 진출하여 우승까지 하며 그야말로 완벽한 역사를 만들어 냈다. 척박한 랑카 사람들의 마음에 새살이 솔솔 돋아 난 것만 같다. 사실 지난주 준결승전부터 반강제적으로 경기 중계를 보게 되었다. 처음엔 다시 국가비상사태가 난 줄 알았다. 어디서 시위가 났나 또 무슨 일이 벌어졌나 걱정하며 뉴스를 보니 인도와의 아시아컵 크리켓 준결승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랑카는 크리켓 강국 인도를 상대로 놀라운 성적으로 승리를 만들어 내고 결승에 진출했다.


스리랑카에서 크리켓은 과히 국민 스포츠라 할 수 있다. 크리켓 열기는 한국의 프로야구 혹은 월드컵을 방불케 한다. 오늘처럼 큰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점수가 날 때마다 아파트가 들석들석, 동네가 시끌시끌하다. 사실 크리켓의 양대산맥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불리지만 스리랑카 역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크리켓 강국이다. 올해까지 총 6번의 아시아컵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1996년 크리켓 월드컵 우승,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남자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스리랑카는 Lanka Premier League(LPL)라는 프로리그를 가지고 있는데 전국구 지역을 기반으로 총 5개의 프로팀이 활동하고 있다.

랑카에 크리켓이 처음 들어온  크리켓 종주국인 영국 식민시대의 영향이었다. 크리켓은 지금도 영연방 국가들에서 인기가 많은 스포츠다. 특히 남아시아인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그리고 방글라데시에선 문화이자 삶의 일부가 되었다.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녹아들어서 인지 크리켓 경기장은 콜롬보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있다. 야구와 비슷하지만 룰이 상당히 복잡하기 때문에 경기를 이해하려면 미리 공부가 필요하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크리켓 경기장을 세 군데나 접하고 있다. 주말엔 크세권이라   있을 정도 옥상정원에서 방향과 자리만 잡으면 다양한 크리켓 경기를 마음껏 관람할  있다. 요즘은 서점에서  크리켓 기본서를 읽으며 경기를 읽어보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미래의 크리켓 꿈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워낙 국가적으로 인기가 있는 스포츠이기에 일반 학교에서도 전문적으로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다. 더운 날씨에도 실외 훈련을 하고 있는 학생들 그리고 역시나 높은 교육열답게 그 앞을 지키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이제 익숙하다. 물론 어린 선수들 뿐 아니라 방과 후 골목길 아이들도 크리켓을 즐긴다. 지역에 따라 가진 도구가 다르긴 했지만 어디서든 공과 막대기만 있으면 모든 이가 즐길 수 있는 세대와 지역을 관통하는 놀이인 것이다. 크리켓은 어쩌면 모든 이의 자부심이자 어쩌면 이제 하나의 정체성 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랑카 사람들은 크고 작은 경기를 가리지 않고 크리켓이라면 잠깐 가던 걸음을 멈춘다. 잠시 쉬어가며 어딘가에 걸터앉아 경기를 관람하고 무한 환호를 보낸다. 외국인이 경기에 관심을 가지면 옆에 와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이건 어떤 경기고, 누가 이기고 있으며, 왜 점수가 난 것인지.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설명해 준다 ㅎㅎ) 이런 교육의 효과로 이번 아시아컵 결승전을 이해하며 관람하여 알차게 즐길 수 있었는데, 스리랑카 수비 볼러의 공을 치지 못해 위캣을 친 아웃 상황, 배트맨이 친 볼을 잡아 아웃시켰던 결정적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런 국가대항 매치나 정식 리그 경기가 시작되면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스리랑카 크리켓 위원회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은 그 유명한 윔블던의 큐잉을 방불케 한다. 티켓 오피스 옆엔 스리랑카 크리켓의 역사를 그대로 담은 박물관도 자리한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스리랑카 크리켓이 걸어온 발자취 그리고 찬란한 영광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트로피만큼이나 지난 100년 스리랑카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영광의 순간들을 담긴 공간을 만난다는 건 보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랑카의 모든 이의 마음에 작은 희망의 꽃을 피워내는 것. 그야말로 스포츠만이 선사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다. 생활 속에 조금씩 크리켓을 알아가면서 또 역사적인 아시안 컵을 함께하며 랑카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 것만 같다. 크리켓을 유난히 많이 좋아하는 현지 직원에게 우승 축하를 전하니 보석 같은 눈망울이 투명하게 반짝거린다. 끝까지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에게 이 단비 같은 기쁨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웃어보자 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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