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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Sep 22. 2022

책으로 숲을 이루면

Colombo International Book Fair 2022

토요일 오전, 아직 햇살이 뜨거워지기  여유롭게 즐기는 산책을 좋아한다. 밤새 쌓인 나뭇잎을 치우는 가지런한 청소 여사님들의 빗질 소리, 지저귀는 새소리와 가벼운 산들바람은 주말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루틴이다. 편한 복장으로 걷는 익숙한 , 오늘도 아는 고양이들과 강아지에게  사료를 넉넉히 챙겨 걸어가는데..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화려한 깃발이  위로 나부끼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도  멀리 길게 늘어선 줄도 보인다. 2022 Colombo International Book Fair!!! 콜롬보에서 가장 큰 컨벤션 센터인 BMICH에서 열리는 국제 도서 박람회가 개막한 것이었다.

코로나 여파로 지난 2년간 열리지 못했던 국가적 행사여서 인지 규모가 상당했다. 책이라면 참지 않는 나로선 눈이 번쩍 뜨이는 행사가 아닐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파도처럼 넘실대는 인파... 내부가 넓은 공간이긴 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몰려있어 걱정이 됐다. 하지만 국제 도서전을 놓칠  없었기에 가방에 예비로 넣어둔 마스크를    끼고 들어가 보기로 했다. 랑카의 코로나 상황은 많이 나아졌지만 방심하면 언제든 걸릴  있다는 마음으로 여전히 조심 중이다. 입장료는 20루피로 한화 80 정도이니 그야말로 100원의 행복!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와 행사를 즐길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둔 집합소인 걸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문구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교보문고 핫트랙스를 기대하면 안 되지만... 큰 규모의 학용품 행사장엔 콜롬보 사는 학생과 학부모가 다 모여있는 듯했다. 최근에 스리랑카가 종이 부족으로 공책이나 학용품 부족을 겪어서 인지 미리 싼 가격에 학용품을 쟁이려는 사람들로 정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그 어느 때보다 신이 난 아이들의 표정 그리고 높은 교육열만큼이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끼지 않고 지원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이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

넓은 규모지만 전략적으로 방향을 설정해 이동하면 테마별로 배치된 특별도서들을 만날 수 있다. 음악과 문화를 접목한 Musiculture 에선 턴테이블에 담긴 오디오북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정형화되지 않은 책을 새롭게 접할 수 있었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공상 과학, 미래 기술에 대한 책들만 다루고 있는 코너에서도 한참을 머물렀는데 영어 책이 많지 않아 아쉬웠지만 소설뿐 이 아닌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한때 교리교사의 열정을 되살리는 어린이 성경 책부터 영성 서적까지 기대하지 않았던 가톨릭 출판물까지 어찌나 다채로운지 다리가 아플 정도로 걷고 또 걸었던 것 같다.

현지 직원에게  박람회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학창 시절에 부모님과 놀러 가서 책도 사고 학용품도 샀었다며 반가워한다. 그렇게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도서전이었다니..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단위로 놀러 와 집으로 가는 길엔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평소 서점에서 사는 것보다 20-30% 정도 저렴하기에  년에 읽을 책들을 한꺼번에 사는 듯하다. 잔디에 앉아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책을 매개로   시간이 너무도 온화하고 따뜻해서 회복된 랑카의 일상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마음의 양식도 채우고, 길거리에서 농구도 하며 즐기는 소소하지만 오래도록 기억될 순간들...

책들은 출판사마다 다양한 형태로 배치되었지만 랑카 유명 작가전 전시도 되어 있어 그야말로 핫하고 힙한 요즘 작가들도 여럿 알게 되었다. 한국에선 이렇게 작가별 큐레이션을 자주 해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을 깊이 탐독할 수 있는데 랑카에서도 고전부터 신진작가까지 이렇게 친절히 안내해 주니 고마울 수밖에. 각 언어별로 모으고 있는 어린 왕자 책도 드디어 싱할라어 버전으로 득템 했다. 사실 짐이 무겁기도 하고 이삿짐도 생각해야 해서 살까 말까 고민했던 책이 아직 있었는데 아직 눈에 밟힌다. 책 욕심은 끝이 없고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도서전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방문해서 득템 하지 않을까 싶다.

이곳 사람들과 마주하는 문화적 스킨십은 언제나 반갑고도 새롭다. 스포츠든 문화생활이든 언제나 뜨겁고 열정적으로 몰입하고 진심으로 임하는 사람들. 앞으로 어떤 온도와 표정의 랑카를 만나게 될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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