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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e Sep 07. 2022

공간을 여는 사람  

Bawa: It is Essential to be there


전시회는.. 뭐랄까 도심 속 숨이 턱 막히는 일상 속에 잠시나마 맑은 공기를 허락하는 비자림과도 같다. 장르와 테마를 불문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전시는 시간과 기회가 허락한다면 일단 들어 가보는 것 같다. 트리플 J인 나를 유일하게 충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산물이다. 물론 좋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도 찾아가서 좋아하는 작품 앞에 그냥 멍하니 서 있기도 한다. 작품에도 표정이 있어서 올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고 좋은 영감이 떠오르면 다이어리를 꺼내 끄적이는 것을 좋아한다. 서울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선을 잡아끄는 전시회를 찾을 수 있지만 랑카 생활 중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이런 문화생활의 단절이었다. 소소하게 카페와 함께 있는 갤러리를 찾긴 했지만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 내게 단비 같았던 전시가 있었다. 스리랑카가 사랑하는 건축가 Geoffrey Bawa: It is Essential to be there.

사실 제프리 바와는 랑카에 와서 처음 알게 된 건축가다. 그는 ‘신지역주의’를 토대로 동양과 서양의 감각이 섞인 ‘트로피컬 모더니즘’이라는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구축한 예술가이다. 그래서인지 소위 콜롬보의 힙한 혹은 중요한 장소엔 항상 Bawa라는 이름이 고유명사처럼 따라붙는다. 우선 그런 건축가가 살던 곳은 어떤 곳인지가 궁금해 그가 직접 만들고 머물던 장소는 한 번씩 둘러보았다. 그가 쓰던 작업실은 개조되어 Gallery cafe라는 다이닝 공간으로 변모했고, 거주하던 집은 Number. 11 그리고 그를 건축가로 이끌었던 소금 정원 Lunuganga는 깊은 수풀 속 보물처럼 숨겨진 명소가 되었다. 그리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유명한 건축가가 탄생하기까지 고뇌, 습작, 그리고 작품 비하인드 스토리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을 방문했다.


It is essential to be there


바와가 만든 건축물에 들어서면 처음엔 너무 날것의 구조에 당혹스럽다. 하지만 곧이어 공간에 집중하고 탐색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감이 찾아온다. 마치 모든 것에 자연스럽고 이질감 없이 나마저 공간에 녹아들어 가도록 설계된 것만 같다. 바와는 1957년 에드워드 레이드와 베그에서 공식적으로 건축 경력을 시작하며 산업 시대의 기술 발전으로 혁신적인 영감을 받는다. 그러나 당시 스리랑카의 폐쇄적인 경제와 1977년까지 지속된 긴축 정책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지 않구나)으로 강화 철과 유리를 공급 차질로 어려움을 겪는다. 바와는 그가 설계한 형태와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곳에 있는 건축 재료와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섬에서 철은 부식되어 대안이 필요했고, 노출된 콘크리트 발코니를 만들어 아래층에 그늘을 만들고 자연통풍이 가능한 건물을 구상한다. 스리랑카의 것들이 사람들의 공간에 있을 있도록 말이다.


바와는 또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지키되 공간의 다양성을 확장하며 건물을 그려나간다. 장소를 직접 보지 않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다고 말할 만큼 그곳에 사는 사람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최우선으로 두었다.  그저 자신의 명성이 돋보이는 기념비가 아닌 이곳을 이루는 모든 것들과 어우러진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고자 했다. 대표작인 The Ena de Silva House에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콜롬보 인구 밀도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정원을 집 안으로 들이는 파격적인 시도였으며,  Hanwelle 지역 고아 소녀들이 농업과 공예 기술을 배우는 학교 건축 프로젝트에선 언덕이 많은 풍경을 유지하여 소녀들이 주변 환경과 깊게 연결되어 친숙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무엇보다 Polontalaw 방갈로에선 건물을 구성하기 위해 현지의 바위와 지형조건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동안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나누던 식민시대의 관행을 바꾸고자 했다.



I like to regard all past and present good architecture in Sri Lanka as just that good Sri Lankan architecture


거창한 의미는 없다. 그저 건축가는 스리랑카의 모든 과거와 현재의 좋은 건축물을 그저 좋은 스리랑카 건축물로 간주하고 싶었다. 물론 건축은 필연적으로 상징적인 역할을 맡는지라 그는 국가적인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특히 루후누 대학 캠퍼스는 야심 찬 국가 프로젝트이자 엄청난 공학적 위업이었던 만큼 전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캠퍼스의 디자인은 혁신하는 교육의 가치를 구현하고 긴 복도와 넓은 공공 공간으로 모두가 만나 협력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을 반영했다고 한다. 사실 마타라에 여행 갔을 때 이 캠퍼스를 보고 싶어 따로 방문한 적이 있었으나 외부인 출입이 어려워 들어가지 못했었다. 바와가 해석한 상호 협력과 만남의 교육은 어떤 모습일지 아직도 궁금하긴 하다.

                                                                        루후누 대학 조감도.
집 안으로 들어온 내뜰, The Ena De Silva House

전시회에선 습작한 도면을 볼 수 있었다. 바와의  기록 보관소라 할 수 있는 도면은 어떻게 그의 상상이 아이디어로 그리고 그림을 거쳐 현실이 되었는지 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특이했던 건 바와의 여행 사진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 사진들은 그가 방문한 장소들 간의 관계가 깊이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지도책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모든 상상과 아이디어는 여행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정에서 만난 공간, 그 공간이 주는 영감, 그 영감이 만들어 내는 상상, 상상 속 사람들 그리고 공간과의 역학관계, 손끝으로 그려나가는 이미지 그리고 실력으로 구현되는 창의적인 공간의 탄생. 모든 예술은 구현되는 방법이 다를 뿐 어쩌면 그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다.

전시회를 보고 나오니 어느덧 어둑해진 Park Street. 좀 더 적극적으로 기획전시를 찾아봐야겠다. 이 섬의 화가, 작가, 음악가 그리고 배우도. 오늘의 랑카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이를 표현하는지 보물찾기 하 듯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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