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대한 단상
치열하게 일상을 살다가 갑자기 쉼이 찾아오면 나의 세계엔 이상하게도 불안이 찾아온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침대 속에서 하루종일 잠만 자다가, 어느 고요한 새벽엔 홀로 일어나 밀린 플래너를 펼친다. 문득 가슴속에 스며드는 현실의 불확실함 그리고 그 안에 비친 불완전한 내가 보인다. 세상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한 계획을 빼곡히 전투적으로 세우기 시작한다. 최대한 많은 변수를 고려하여 2중 3중 안전장치를 만들고서야 비로소 안심이 든다.
하지만 스스로 구조화한 세상은 언제나 쉽게 깨어지고 부서진다. 특히, 외부적인 요인보다 단순 의지 부족과 같은 내면의 취약성으로 스스로와의 약속이 깨질 때 더 큰 두려움이 엄습한다. 밀물처럼 몰려오는 회의감과 자책감에 잠식될 것만 같으면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컴퓨터를 켜고 빈 화면을 띄우는 일… 마치 의식과도 같은데 깜빡이는 커서를 벗어나 짜인 틀에서 나를 잠시 건져 숨을 쉬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무의식의 흐름대로 한바탕 써내려 가다 보면 어쩐지 ‘괜찮네…’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불확실하고 나는 불완전해. 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초라하게 만들던 취약함에 더 이상 공격받지 않은 느낌이다. 샤샤 세이건의 말처럼 어쩌면 두려움은 나의 심연의 가장 단단한 곳까지 이를 수 있는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시작은 불안이었지만 막연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써 내려간 글은 나에게 소속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의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하게 하는 기쁨이 되었다. 두려움에 떠밀려 내달린 길 끝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었다. 나에게 두려움이 찾아오면 " 또 한 번 나의 심연에 더 깊이 다다르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구나. 이제 찬찬히 걸어가 볼까?"라고 여유를 부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내공으론 아직 어림도 없겠지만)
결국은 우리의 취약함이 우리가 무언가 더 깊은 것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사랑도 그렇고 오류를 기꺼이 인정한다면, 예측이나 선입견을 과감히 놓쳐 버릴 수 있다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에 다가갈 수 있다.
- p.107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샤샤 세이건
성장의 정의에 “두려움을 마주한다”라는 의미가 들어있기도 한다.
무언가 힘든 일을 하고, 자신을 해방하고, 내 운명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이 성인이 되는 관문이다. 운전면허를 따는 것처럼 심상한 일이라도 그렇다.
- p.142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샤샤 세이건
앞으로도 인생길에 크고 작은 두려움들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심호흡 한번 하고 내 삶의 일부이자 기쁨의 촉매제가 되는 이 감정을 온전히 포용하며 걸어 보려고 한다. 이렇게 호기롭게 이야기하지만 나약한 인간이기에 수없이 낙담하고 시행착오를 겪어나가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불안함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나의 세상이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이 여정이 나를 둘러싼 모두에게 힘이 되고 성장하는 해방일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