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대한 두려움
어릴 때 몸으로 배운 것은 자연스레 체화된다고 하던데 물은 언제나 나를 멈칫하게 한다. 분명 초등학교땐 평영이라 말하고 개구리헤엄인 영법으로 위풍당당 물살을 가르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여름 나라에 살면서 더욱이 물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당장 살고 있는 아파트 옥상 수영장, 여행길마다 만나는 다양한 표정의 인도양 바다, 그리고 멋들어진 호텔의 인피니트 풀이 언제나 나를 부르고 있었다. 뜨거운 적도의 햇살을 한 움큼 머금은 물결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일단 물에 들어서면 ‘그래, 나에게 분명 감각은 남아 있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의기양양 첨벙인다. 하지만 이내 바닥이 깊어져 조금이라도 발이 안 닿는다 싶으면 온몸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결국 혼자 동동거리다 물을 먹고 있으면 자유롭게 물살을 가르며 놀던 친구들이 잡아채 건져내 주기 일쑤였다. 소심해진 난 결국 ‘멀리 보아야 아름답다’를 되뇌며 파라솔 밑에서 책을 읽거나 얕은 뭍에서 물장구만 쳤다. 그렇게 물과 친해져 까맣게 그을리며 서핑,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 속에 어느덧 관전자가 되어버렸다.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걸까? 가장 큰 장벽은 호흡이었다. 내 의지로 몸과 마음이 통제가 되지 않는 환경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는 것이 나를 압도하는 공포로 다가왔다. 살아온 세월만큼 이젠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중력에 익숙해져서일까? 그냥 내맡기듯 자연스레 힘을 빼면 부력으로 뜰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 내 무게가 만만치가 않은데… 꼬르륵 가라앉으면 어떡하지? 또 물을 먹을 거고 거기에 바닥이 닿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들
일단 해보는 거야!
머릿속에 여러 시뮬레이션을 굴려본들 무슨 소용이라. 물속에서의 자유를 만나고 싶다면 그 안에 발을 들여놔야 한다. 일단 수영 강습에 등록했다. 이왕이면 새벽반으로. 이어지는 한파에 겨울수영이 무리가 아닌가 싶었지만, 무덥고 습기 가득한 여름이 아닌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겨울 새벽 공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동이 트지 않은 시간, 세상이 아직 깨어나지 않아 고요할 줄만 알았는데 정적을 깨고 멀리 운동장을 가르는 축구의 열기, 조깅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움직임이 보인다.
한해의 모든 다짐이 시작되는 1월이어선지 한겨울인데도 초급반 수강생이 무려 16명이나 된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것도 어색한데, 이 많은 사람들과 같은 물속에서 호흡하며 수업을 한다는 게 어쩐지 생경하기도 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물을 익히는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났다. 첫 주엔 알 수 없었던 선생님의 "물을 눌러가면서 차세요...!"라는 느낌이 어느새 몸에 감기고, 부력장치가 하나둘씩 떼어져도 몸이 떠오름을 서서히 체감한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Keep on Moving!
우리는 삶과 죽음의 원천인 물의 역설에 끌리고, 물속에서 움직이는 온갖 방법을 강구한다. 누구나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 수영에 얽힌 사연이 하나쯤은 있다. 이런 보편적 (물을 무서워하든, 물을 사랑하든, 물에서 떠나든,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물을 만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경험을 들여다보면 스스로 생존 근육을 풀고 물속에서 버티면서 조용히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수영장을 찾아다니고 오아시스를 옮겨 다니며, 우리를 좀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갈 미끼를 찾아 헤맨다. 세상을 탐험하는 일이다.
-18p 수영의 이유, 보니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