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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14일의 법칙

by 율마

**22년 호르몬성 유방암 2기 선고 -

선항암, 수술, 방사선치료까지 표준치료를 마치고 5년 호르몬약 치료 중인 환자입니다.

암치료를 했던 시기의 기록, 사진, 감정 그리고...

현재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20221026_120512.jpg 처음 가발을 쓰고 나갔던 날

항암 2주 차였다.

아침에 일어나 베개를 봤는데,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예고된 일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유튜브의 모든 투병 브이로그도, 유방암 카페의 글귀들도 모두 그렇게 말해줬다.


"14일의 법칙, 2주쯤 지나면 머리카락 빠져요."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나는 비켜가지 않을까 조금 기대도 했었는데.

막상 내 머리카락이 손에 한 움큼씩 빠져나오니까, 숨이 막혔다.

샤워를 하다가 배수구를 봤다.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기 시작하다가 가발처럼 훌렁 벗겨졌다.

물이 안 내려갈 정도로 쌓인 머리카락을 보다가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소리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는데 그것보다 마음이 아팠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그냥 바닥에 앉아서 샤워기 소리에 울음소리를 숨겼다.

훌렁훌렁 빠지는 머리카락을 그냥 손으로 계속 쓸어내렸다.

빗으로 머리를 빗으니 좀 더 잘 빠졌다.

그때 거울을 보지 못했다.


나는 혹시 몰라서 준비해 뒀던 면두건을 뒤집어쓰고 욕실에서 나왔다.

두건을 쓴 내 모습을 본 신랑은 어색한 모습을 봤지만 모른 체 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괜찮아?" 하는 물음은 하지 않았다.

미리 부탁했었다. 무슨 모습을 보든, 어떤 상황이 되든, "괜찮아?" 하는 물음은 하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물으면 괜찮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는 것도 막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렇게 부탁했다.


나는 머리를 밀지 않았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미는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내가 암에 걸려서 항암을 하는데 머리를 밀러 왔다는 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미용실 예약을 하고 누군가 보지 않게 머리를 깎곤 한다는데 그것도 싫었다.


머리를 깎아주면서 "어떻게... 괜찮아질 거예요..." 하는 눈빛과 말을 건네받는 것도 싫었다.

삐딱한 마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정말 싫었다.

나는 머리카락이 그냥 자연스럽게 빠지도록 내버려 뒀다.


첫 항암 2주 뒤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하던 것이 서서히 빠지고 듬성듬성 한가닥 한가닥 남아있는 모습이 아마도 흉했을 것이다.

나도 내 그 민머리를 제대로 본 것은 거의 항암이 끝나갈 때였을 거다.

나는 나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샤워가 끝나면 거울을 보기 전 두건을 뒤집어썼다.

두건은 내 두피와 같은 상태로 붙어있었다.


항암을 하면서 나는 주사를 맞고 온 일주일은 시체처럼 집에만 누워있었다.

나가고 싶지 않아서 누워있었던 것이 아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누워만 있어야 했다.


첫 항암을 하고 와서는 절망적이었다.

이렇게 시체처럼 누워서 8번의 항암, 6개월을 보내야 하는 걸까?


이게 맞나?


그런데 2번째 항암을 하러 갈 시기가 되었을 때, 알 수 있었다.

왜 3주 뒤에 다시 맞으러 가는 것인지.

일주일 그렇게 침대와 한 몸으로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일어나서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몸이 괜찮아지기 시작하는 시간, 일주일.

그리고 남은 2주 동안은 다음 주사를 맞기 위해... 다시 좀 살만 하다 하는 생각이 들게 몸이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그 루틴이 어떤 건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래도 일주일만 버티면 살만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희망을 가지고 버틸 수 있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그래도 조금 살만한 구멍은 만들어 주는구나.


6일 차까지 죽을 만큼 힘들고 나면 그래도 하루는 또 견딜만했다.

하루만 버티면 이제 괜찮아질 거야....

요즘도 힘든 순간이 오면 그런 생각을 한다.


내일은 좀 더 괜찮을 거야.

오늘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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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탈모 빠지는 머리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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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미는 것도, 밀지 않는 것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좋아요.

어떻게 하는 것이 정답이란 것은 없어요.

저는 골룸 머리로 항암이 끝날 때까지 지냈고, 어느 순간 머리카락이 다시 솜털처럼 자라다가 또 항암 주사를 맞고 오면 빠지고를 반복했어요.


까슬까슬한 머리카락이 나면 누웠을 때 따갑기도 하고,

샤프심이라고 말하는 표현이 있는데.. 정말 부러진 샤프심처럼 빠져서 베개에 콕콕 박히기도 해요.

그런 것이 싫으면 머리를 미시는 것도 좋아요.


골룸처럼 한가닥 두 가닥 남아있는 두피로 지내다 보니...

끝까지 빠지지 않은 머리카락이 그렇게 기특하더라고요.

그 독한 항암주사에도 견디는 것이...

근데 어찌 보면 튼튼하지 않은 뿌리여서 그런 걸까요.

성장이 빠른 세포를 찾아가는 항암제여서 손톱과 머리카락처럼 자라는 세포를 같이 공격한다고 해요.

20221018_143040.jpg 서울대암병원 주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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