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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율 Nov 01. 2020

너, 빨리 낳지 않으면 갈수록 더 힘들어져.

프롤로그

나는 스물 여덟에 결혼했다. 그리고 신혼기간이 5년이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막연히 막막했다.  아직은 시간 많은데 뭐. 이런 생각으로 신나게 신혼을 즐긴 것이다. 그게 쌓이고 쌓여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친정에서는 난리가 났다. 특히 친정엄마가 직접적으로 압박을 주었다. 


"너, 빨리 낳지 않으면 갈수록 더 힘들어져." 


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더 숨고 싶어 졌다. 아이는 제가 낳는 건데요. 속에서 이는 거센 반항심을 억지로 억지로 잠재웠다. 이제 생각해 보니 엄마는 그렇게 말할 만했다. 엄마는 나를 스물네 살에 낳았으니까.


추석 연휴,  시댁에 가서 잠을 잘 때였다.


피곤해 먼저 방에 몸을 뉘었을 때, 밖에서 시어머니와 신랑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신랑은 나보다 더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에 방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와 시어머니의 논쟁은 제법 긴 시간 이어졌다.


"아이를 키우면서 얻게 되는 기쁨이 정말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로 크거든."


드라마든 영화에서든 너무도 많이 들어왔던 그 말. 그래서 설득력이 더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은 그 후로도 긴 논쟁을 이어나갔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끝이 없는, 평행선 같은 제각각의 의견을 배경음악 삼아 난 잠이 들었더란다. 어차피 금방 잊힐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랬는데.


어머님의 말씀은 생각보다 깊게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추석 후에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아이가 주는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물론 내 몸에서 난 것이니 예쁠 만도 할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이 꼬물거리며 움직일 때. 복숭아빛의 통통한 뺨이 오물거릴 때, 엄마와 눈 맞춤을 하면서 살포시 웃는 미소를 마주했을 때. 물론 기쁘겠지. 상상하면 물론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겪어보지 못했으니 그 기쁨이란 게 어느 정도 내 맘에 와 닿을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즈음이 2016년 가을. 내가 결혼한 지 4년을 채운 때였다. 내 나이 서른두 살. 


당시 난 다니고 있던 계약직 기간이 만료되어 잠시 쉬던 중이었다.  매일매일 할 일이 없어 집 밖을 돌아다녔다.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대학교 졸업 이후 쉬지 않고 일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껏 혼자 노는 시간들이 내겐 너무나 소중했다. 퇴직 후 3개월 정도는 그렇게 마음 놓고 놀았더란다. 그러다 슬슬 가슴속에서 움트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처음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공허함. 이름을 붙이지 못했던 그 감정이 꿈틀거릴 때, 나는 신랑을 볶았다. 


“미치겠다. 너무 심심해! 심심하다고!”

“그래? 그럼 밖에 나가지 뭐.”


일 하느라 피곤에 절어있는 신랑을 끌고 저녁때마다 드라이브를 하며 방황했다. 마트에 가서 필요 없는 식재료를 사거나, 평소엔 가지도 않는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를 먹기도 했다. 신랑은 정처 없이 방황하는 나를 참 열심히도 맞춰 주었다. 집에 있는 플스 2 게임기를 새벽 1시까지 가지고 놀면서도 귀찮거나 싫은 기색 한번 보이지 않았다. 그런 착한 신랑이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신랑이 잠든 새벽. 그의 옆에 나란히 누워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친구 같은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


해놓고도 놀라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몇 주 정도 비슷한 생각이 반복해서 머릿속을 배회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내 옆에 다른 사람은 볼 수 없는 작은 아이가 자리했다. 밥을 먹을 때 내가 형상화 한 아이가 옆 자리에 앉아 먹는 모습, 목욕할 때 아기 욕조 안에서 물을 튀며 놀고 있는 아기의 모습 같은 것들이 꼭 사진 속 한 장면처럼 형상화되어갔다. 


마음은 주먹만 한 눈 뭉치가 굴러 굴러 눈사람이 되듯 그렇게 커져갔다. 


몇 주 후, 우리 부부는 여행을 갔다. 대부도의 바닷가를 구경하고 조개찜을 원 없이 먹었다. 펜션 안에서 무한도전 재방을 보면서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툭툭 꺼내놓기도 했다. 그때 난 신랑에게 이야기해 보았다. 


“오빠. 우리 아이가 있으면 어떨까?”

“글쎄….”

“글쎄?”


지금 생각해보건대, 오빠의 저 글쎄란 대답은. ‘아이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정말로 몰라서 망설이는 것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있다면 어떻겠다 하는 생각들. 자기 시간이 없어진 다는 건 당연히 각오를 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 날의 대화는 아이가 오는 것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다듬어가는 과정이었다.


특별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은 채, 우리는 여행에서 돌아왔다. 대부도에는 여기저기에서 포도를 팔았다. 여행 내내 달콤하고 탐스러운 보랏빛의 포도가 무척이나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여행 내내, 나는 포도를 먹었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 한 박스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 포도를 거의 다 먹었을 무렵,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느꼈다. 


소중한 나의 아이. 밤이가 내 곁으로 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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